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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은 고열량 못 파는데 … 학교 앞 문구점은 규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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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에서 팔리는 100~500원짜리 저가 식품들. 일반 문구와 함께 전시된 식품은 유통기한을 찾기 힘든 것도 있었다. 대부분 중국·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입된 것으로 주성분은 설탕·물엿 등이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D초등학교 정문 앞. 이 학교 가까이에 있는 A문구점에 어린이 4명이 들어와 쫄쫄이, 쫀드기, 자두맛 캔디 등을 골랐다. 3학년 박모군은 “일주일에 서너 번 오는데 싸고 맛있는 것을 사 먹는다”고 말했다. 5학년생 김모군에게 “유통기한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무엇인지 아는데 보이면 확인하지만 안 보이면 그냥 먹는다”고 대답했다. 이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식품류는 모두 18가지다. 한 가지씩 구입하니 3600원이었다. A문구점은 식품과 문구를 따로 구분해 놓지 않고 식품을 팔고 있었다. 초콜릿류 등 기온이 오르면 변할 위험이 있는 식품도 눈에 띄었지만 냉장고는 없었다.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의 절반 이상이 냉장고 등 기본 위생 설비도 갖추지 않고 수입·저가 식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하는 식품도 설탕·물엿·포도당 시럽 등만 함유해 열량만 높고 영양은 거의 없는 식품 이었다.

 이는 중앙일보와 소비자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가 이달 1∼4일 서울의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 44곳(구별로 1∼2곳)을 직접 방문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식품의 변질을 막기 위한 기본 장비라고 할 수 있는 냉장고를 보유한 곳은 44곳 중 19곳(43.2%)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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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안에 매점이 있는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초등학교엔 매점이 없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이 사실상 매점 역할을 한다. 중·고교 매점에선 고열량 저영양 식품의 판매가 금지돼 있으나 문구점엔 이런 제한이 없다. 규제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문구점 식품 중 일부는 유통기한이란 표시 없이 ‘130910’(2013년 9월 10일이란 뜻) 등 숫자만 나열돼 있어 아이들이 알기 힘들게 돼 있었다.

문구점에서 파는 저가 식품 중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폴로.

제품을 산 뒤 포장을 벗겨야 유통기한·열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강남·서초구에서 조사를 한 녹색소비자연대 김소라씨는 “영양표시는 돼 있었지만 낱개 포장 제품이어서 글씨가 너무 작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대부분이었다”며 “각종 표시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안전성 논란으로 일반 식품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전자재조합 옥수수 포함 가능’이라고 명기된 제품까지 보였다. 이 중국산 초콜릿 가공품은 1개가 19g인데 열량이 100㎉였다.

숙명여대 김현숙(식품영양학) 교수는 “밥 한 공기의 열량이 300㎉인데 아이들이 점심 급식 뒤 군것질로 초콜릿 과자 세 개만 먹으면 금방 200㎉가 넘는다”며 “이런 식품을 자주 먹으면 비만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자극적인 맛으로 어린이들을 유혹하기 위한 색소·향료 등 식품첨가물을 넣은 식품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10가지 이상의 식품첨가물이 든 것도 있었다.

어린이들의 균형 잡힌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식품이지만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수입·통관 과정의 검사를 거쳐 정식 수입됐기 때문이다. 수입 과정에서 이런 식품이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리는지는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4대 악의 하나로 규정하자 식약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의 식품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식약처 박혜경 식품영양안전국장은 “학교 주변 문구점 중 냉장고와 진열대 등 일정 시설을 갖춘 곳을 우수판매업소로 지정해 이곳에서만 식품 판매를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곳에선 중·고교 매점과 같이 고열량 저영양 식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말 현재 전국의 학교 주변 문구점 수는 6369곳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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