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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주인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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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JTBC 사회1부장

‘써니(SUNNY)’. 2011년에 개봉해 700만 관객을 모은 우리 영화다. 여고생 시절 칠공주가 20여 년 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모이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남성들에겐 다소 낯선 여성들만의 우정과 의리가 꽤 인상적이다. TV 영화채널에서 우연히 접하고는 4, 5번 본 것 같다. 다른 어떤 장면보다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이런 대사다. 주인공 임나미(유호정)가 하춘화(진희경)에게 한 말이다. “인간 임나미, 아득한 기억 저편이었는데…나도 역사가 있는, 적어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더라고.” 방관자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닌 내 인생의 주인공. 멋진 말이었는지 가끔씩 대사를 읊어보곤 했다.

 요즘 써니의 그 대사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가슴 먹먹한 소식을 접할 때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어린 학생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 말이다. 부진한 성적을 비관하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할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떠올리면 더 먹먹하다. 그러면서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혹시 아이들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했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삶의 주인공이란 자존감을 불어넣어준 적이 있을까.

 자신 있게 긍정적인 답을 하긴 어려울 듯하다. 좋은 부모가 많지만 자녀들을 짜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조연으로 여기는 부모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자녀의 현재 모습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부모가 세워놓은 기준이 먼저다. 이런 모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서울교육청이 최근에 내놓은 학교폭력 대처법 내용이 한 예다. “속상해 죽겠어. 너 왜 이렇게 맞고 다니는 거야?” “엄마가 창피해 죽겠어.” 어렵게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자녀에게 이 같은 반응은 절대 금물이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지금이라도 얘기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 말처럼 아이를 삶의 주체로 인정하고 함께 공감해줘야 한다.

 학교 역시 학업성적이 부진한 아이를 우등생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으로만 대하진 않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제자들에게 두루 사랑을 베풀고 관심을 쏟는 교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지원을 집중하는 학교도 꽤 있다.

 이래선 아이들이 자존감,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극단적인 선택들을 보면서 주인공 의식이 강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주인공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꿋꿋하게 난관을 헤쳐나간다. 그래서 주인공인 거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살 권리가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가정과 학교, 사회는 아이들에게 그런 자존감을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 삶의 조연이 아니라 그들 삶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넌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

강갑생 JTBC 사회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