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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무게 따라 돈 더 내는 뚱보 수난시대 … 몸무게가 인격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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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뚱보는 대개 두 가지 이미지다. 게으름뱅이 또는 부자.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기억 속 뚱보는 후자 쪽이었다. 일단 귀했다. 한 반에 60~70명이 우글댔지만 벗겨놓으면 대개 새카맣고 삐쩍 마른 놈들투성이였다. 밀가루칠만 하면 표본실 해골과 다를 바 없는 친구들도 꽤 됐다. 딱 한 명뿐인 뚱보, 줄반장이던 A는 달랐다. 뽀얗게 살이 오른 통통한 몸매, 미쉐린 타이어의 캐릭터 ‘뽀얀 뚱보’ 비벤덤을 옮겨놓은 듯했다. 인심도 후했다. 점심시간이면 반찬으로 싸 온 햄 한 통을 한 조각씩 배급하듯 나눠줬다. “나는 맨날 먹어서 질려”라는 멘트와 함께. 햄은커녕 소시지 구경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고마워” 또는 “맛있어”. 줄 서서 받아 먹은 친구들은 부러움과 찬사의 한마디씩을 던져야 했다. 왠지 그게 싫어 침만 꼴깍 삼키고 1년을 버텼지만,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때 그냥 먹고 볼걸. A는 햄표를 밑천 삼아 반장에 도전했지만 낙마했다. “안 먹고 안 찍어준 너 때문에 떨어졌다”며 꽤 오랜 시간 나를 원망했다. 아마 그때일 것이다. ‘뽀얀 뚱보’를 괜히 피하게 된 건.

 그 ‘뽀얀 뚱보’들이 수난이다. 미쉐린 맨, 비벤덤부터 불똥이 튀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타이어 회사 미쉐린은 뚱보 직원에게 내년부터 건강보험료를 1000달러 더 물리기로 했다. 허리둘레 남자 40인치, 여자 35인치 이상이 대상이다. 비벤덤의 허리는 얼마쯤 될까. 사람으로 치면 40인치는 훌쩍 넘을 터다. 세계 기업사에 최고 성공작으로 불리는 뚱보 캐릭터 비벤덤마저 이제 와선 뚱보란 이유로 홀대 받는 꼴이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엔 ‘근수대로’ 비행기삯을 받는 항공사도 나왔다. 남태평양의 사모아항공은 이달부터 몸무게 1㎏당 0.5~1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몸무게를 ‘자진 신고’ 해야 할 뿐 아니라 탑승 전 확인도 필수다. 노르웨이의 경제학자 바랏 바타 교수는 “몸무게와 체중에 따라 항공료를 매기면 ㎏당 3000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모아항공이 제일 먼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거센 ‘뚱보 차별’ 논란이 일었지만 ‘비만 감축에 효과적’이란 반론도 만만찮다고 한다. 영국에선 운동 안 하는 뚱보에겐 복지 수당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오랫동안 뚱보는 친근과 성취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 입 먹어서 뚱보가 될 수는 없다(一口吃不成個<80D6>子)’는 중국 속담이 좋은 예다. 중국에선 이를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쓴다. ‘뚱보, 아무나 안 된다’는 긍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몸무게가 인격·능력·신분이 돼버린 세상, 뚱보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문득 그리워진다.

 뱀 다리: A야 미안하다. ‘오버’했다. 그렇다고 동창회에서 만나면 모른 척하기 없기다.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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