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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서강대교를 견자교로 만들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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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한 공부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전직 장관 출신 국회의원이 좀 늦겠다고 전화를 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견자교(犬子橋)를 건너고 있다는 것이다. 모임 장소가 용산인데 견자교가 어디기에 곧 도착한단 말인가. 도착한 그가 말했다. 서강대교의 별칭이라는 것이다. 연원은 알 수 없지만 국회에서 혼쭐이 난 정부 측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내뱉은 말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를 나오면 바로 서강대교다. 국회에서 당한 장·차관들이 서강대교에 올라타면서 참았던 울분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장·차관이 아니더라도 국회를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대체로 분풀이는 ‘개××들’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 서강대교는 어느새 견자교(개자식 다리)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오늘의 정치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아 보인다. 지금 서강대교에서 내던지는 분풀이의 방향이 뒤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해 쏟아내는 표현들이 심상치 않다. 얼마 전 있었던 당·정·청 수뇌부 워크숍에서 그 분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언론들은 ‘친박의 역습’이니, ‘정권 주주들의 전문경영인들에 대한 경고’니 하며 ‘과거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출범 2개월이 되도록 정부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청와대, 이 청와대에 이의(異議) 제기나 하는 군소정당 같은 새누리당의 모습이다. 오래전에 본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는 현상이다. 체코를 무대로 여성 편력을 일삼는 외과의사의 제멋대로의 삶을 다룬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 제목처럼 지금 우리 집권 세력의 모습을 잘 묘사하는 것도 없는 듯싶다. 청문회에 왜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청와대나 정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아연해 하고 있다. 또 정권을 리드해야 할 새누리당이 청와대에 이의 제기나 하는 모습에서 우리 ‘정치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새로 시작하면 흔히들 천지(天地)가 바뀐다고 한다. 여당은 하늘로 올라가고 야당은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야 간의 명암은 천지의 변화를 실감케 할 정도라는 말이 있다. 임기제 공직자들은 새로운 줄 대기에 바쁘고, 관료들은 안면몰수하기 일쑤며,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구름처럼 흩어지는 것이 권력의 명암이다. 그래서 야당은 청와대와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창을 뽑아 들고, 여당은 이를 막기 위해 방패를 드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의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창을 뽑아 들 힘조차 상실한 듯하며, 여당은 방패를 들 의사도 힘도 없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정치가 여야 간의 대립 축보다는 오히려 여야 내부의 대립 축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홍에 휘말려 있는 민주통합당이나, 청와대와 티격태격하는 새누리당의 모습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한심한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민주정치에서 정당은 민의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런데 지금 이 거울이 일그러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당 대립을 근본 축으로 하는 대의정치의 근본 틀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누가, 어디서, 어떻게 국가의 정책을 토론하고 결정하는지 알 길이 없다. 여당 의원들의 의사조차 입력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인사’에서 ‘17초 사과’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몇몇 청와대 비서관들의 연속되는 실책을 정권 초기의 피할 수 없는 코스트라고만 볼 수 있을까. 다가오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내년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40% 초반의 지지율에 맴도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관용해줄지 걱정거리가 아닐까.

 새누리당 의원들마저 서강대교를 견자교로 만드는 상황은 특정 대통령과 여당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주정치 과정의 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누가 청와대와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청와대는 모든 것을 정치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정치에서 등을 돌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에서 등을 돌린다고 별천지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등을 돌려 봤자 거울에 비치는 것은 일그러진 정치의 진원지인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든 좋든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새 시대에 맞는 정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여당 의원들마저 서강대교를 견자교로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