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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신호 안 보이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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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열린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에 이 정도로 관심이 집중된 전례는 드물다. 이유는 한 가지다. 한국 경제가 당장 수혈을 받아야 하는 환자처럼 빈사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경제는 세계의 열등생이 돼버렸다. 지난해 경제성장률(2.0%)은 미국(2.2%)보다 못하고 일본(2.0%)에도 따라잡혔다. 올 1분기 성적도 이들 나라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미국 0.9%, 일본 0.8%: OECD 추정).

 일자리·소비·투자·수출·주가 어느 것을 봐도 경기 회복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북한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경제심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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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정부와 한은의 합작이다. 이명박 정부는 균형재정이라는 명분에 매달려 재정지출을 제대로 늘리지 않았다. 한은은 금리인하를 미적거렸다. ‘통화정책의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등의 현실감 없는 핑계를 댔다.

한은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물가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개월 연속 1%대(전년 동월 대비)다. 전월비로 따지면 지난해 이후 6개월이나 소비자물가가 하락했다. 물가는 오르지 않는데 경기가 침체하는 디플레이션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경제를 회생시키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장이 금통위의 금리 결정에 주목하는 것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와 통화당국의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이 합심해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게 하는 동안 우리는 정부나 민간이나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면서 “기준금리 인하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경기 살리기에 올인(All-in)한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수 한은총재는 평소 “한국은행은 미국 중앙은행, 일본 중앙은행과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은의 실제 움직임은 이 말과 달랐다. 기준금리를 5개월 연속 동결한 한은의 모습은 성장동력 복원을 위해 양적완화에 팔을 걷어붙인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일본은행(BOJ)과 한참 다르다. 11일 금통위가 금리를 내리려면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과 전망을 바꿔야 한다. 한은이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머뭇거리기엔 한국 경제의 병세가 너무 깊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안 생긴다=2011년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이모(26·여)씨는 3년째 구직 중이다. 이씨는 “취업 문이 이렇게 좁을 줄 몰랐다. 눈높이를 낮추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의 3월 고용동향은 이씨 같은 사례가 드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20대 일자리는 12만4000개나 줄어들었다. 전체 일자리 증가는 24만9000개로, 한은의 연간 전망치 30만 개에 못 미친다. 기획재정부 김범석 인력정책과장은 “당분간 취업자가 크게 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비가 안 살아난다=이달 초 시작된 백화점 봄 세일 실적은 나쁘지 않다. 3대 백화점 모두 세일 첫 주말(5~7일) 매출이 두 자릿수 신장세를 기록했다(롯데백화점 11.2%, 현대백화점 11.2%, 신세계백화점 13.2%). 그러나 이것을 경기 반전이라고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 경기가 확인되는 대형마트는 아직 냉기가 짙다. 이마트의 경우 이달 1~9일 매출이 -6.9%로 뒷걸음쳤다.

 ◆투자를 안 한다=대부분의 투자지표는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1~2월 설비투자가 16.9% 줄었고, 건설수주는 49.4%나 감소했다. 기업들이 돈이 없어 투자를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1604개 상장사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26조473억원이다.

 ◆수출이 안 된다=S금형회사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올해 수출을 지난해 예상치보다 30% 낮춰잡았다. 실제로 수출전선엔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올해 중소기업들의 제일 큰 걱정이 엔저다. 엔저는 중소기업의 수출 채산성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안 오른다=한국 시장은 올 들어 세계증시의 ‘섬’이 됐다. 각국 증시가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안 우리 증시만 코스피지수 2000 주변을 서성였다. 최근엔 북핵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2000선이 무너졌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엔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가 지속돼 악재가 증폭되는 양상이다. 코스피지수가 1900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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