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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도남·산도녀 … 아웃도어에 빠진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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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7일 일요일 오전, 서울 중계동 불암산 입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봄꽃은 아직 안 피었지만 몰려든 등산객들의 복장은 봄꽃보다 더 형형색색이었다. 가족 단위 등산객뿐 아니라 20~30대 신혼부부, 60~70대 노년층까지 전 연령대가 북적댔다. 개성공단 폐쇄 등 북한의 위협은 계속됐지만 등산객의 발걸음은 오후 늦게까지 끊이지 않았다. 불암산뿐 아니라 요즘 전국 산에서 주말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한국 아웃도어 시장은 세계 각국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에 ‘미스터리 마켓’이다. 성숙기에 도달했나 했더니 계속 커지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는 2006년 1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8000억원(삼성패션연구소 집계)으로 6년 동안 5배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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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약 11조원)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인구가 8000만 명이 넘는 독일·프랑스보다 시장 규모가 크다. 2년 전 한국을 찾아온 독일산 아웃도어 ‘잭울프스킨(Jack Wolfskin)’의 임원들은 서울 시내에서 1시간 거리인 청계산에 오르고 곧바로 수출 물량을 20% 늘리기도 했다. 동네 산을 오르면서도 재킷·등산화·배낭·스틱 같은 아웃도어 장비로 무장한 한국 등산객들을 보고 국내 수요가 탄탄하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

 아웃도어 시장은 최근 캠핑 열풍까지 등에 업었다. 매니어층 위주였던 아웃도어와 캠핑 시장이 이제 매스(대중) 시장으로 넓어지고 있다. 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야외활동을 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대중 시장 확산에 한몫했다.

 매달 두 번씩 산에 오르는 정의현(33)씨는 일주일 전 이마트 자양점 아웃도어 매장에 들렀다가 “여기가 정말 마트 매장이 맞느냐”고 점원에게 물어봤다. 정씨가 일본 도쿄 하라주쿠 멀티숍에서 봤던 스웨덴 명품 브랜드 ‘클라터뮤젠’ 배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도계·GPS로 사용 가능한 핀란드 순토시계, 입는 침낭인 ‘셀크백’, 텐트 브랜드 ‘힐레베르그’ 등 등산가 사이에서나 입소문이 난 유럽 명품들이 대형마트에서 시중가보다 20~50% 정도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정씨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아웃도어 제품이 그간 주로 중저가였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변화”라고 말했다. 캠핑 열풍을 업고 이마트 자양점은 아예 실제 캠핑하는 모습을 연출해 놓았다.

 캠핑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전엔 별로 관련이 없던 이종산업 간의 협업(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다. 빈폴 아웃도어는 한화 이글스와 함께 대전 야구장 외야석에 ‘텐트 존’을 설치했다. 7일 대전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한 손준기(29)씨는 “바닥에도 인조잔디를 설치해 야구를 보면서도 캠핑을 온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코오롱은 최근 끝난 서울모터쇼에 캠핑 전시장을 마련했고, 홈플러스는 캠핑전용용품인 콜맨과 소니의 전자제품을 결합해 팔기로 했다. 캠핑족들 사이에서 사진 촬영 등 디지털기기 활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캠핑 열풍은 의류·등산용품 외에도 식품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30~31일 경기도 가평 캠핑장에서 찌개양념장 ‘다담’의 홍보회를 열었다. 이 회사가 캠핑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J제일제당 박현웅 부장은 “캠핑 돌풍에 다담 매출이 2011년 180억원에서 지난해 250억원으로 3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샘표는 본사 요리교실인 ‘지미원’에서 캠핑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역시 캠핑족을 중심으로 육포·반찬통조림 매출이 15%와 23% 늘었다. 아워홈도 가정간편식 등 캠핑용 제품 비중을 현재 10% 안팎에서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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