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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은 너의 것~ 네 맘대로 살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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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24면

비틀스가 그랬다. “All You Need Is Love”.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라고. 1960년대 영국 젊은이들은 이런 낭만적인 노래를 배경에 깔고 사랑과 평등을 외치며 기존 세계의 질서와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구가했다. 하지만 저들이 부르짖은 자유와 평등, 사랑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자기만을 위한 사랑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연극 ‘Love, Love, Love’, 3월 27일~4월 21일 명동예술극장

이선균, 전혜진 커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극 ‘Love, Love, Love’는 올 들어 영국 희곡으로 연달아 라인업을 채우고 있는 명동예술극장이 데이비드 해어의 ‘에이미’,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이어 세 번째로 선택한 작품이다. 1980년생의 젊은 작가 마이크 바틀렛은 60년대 저항정신의 상징인 히피문화를 본격 조롱하고 나섰다. 이미 은퇴하고 노년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를 도마 위에 올린 것은 저항세대의 DNA는 간데없고 현실에 안주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기심, 입으론 사랑을 말하면서도 희생은 실천할 줄 모르는 부모 세대가 요즘 세대를 궁지에 몰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우리나라 88만원 세대의 현실과 정확히 포개어지기에 긴장감과 몰입도가 높다.

비틀스가 줄기차게 외친 “Love, Love, Love” 세 마디에 빗대어 3막으로 나뉜 연극은 이기적인 사랑의 3단계를 구분해 보여준다. 저항세대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비겁하게 살고 있는 실존의 단면들이다. 각 막을 여는 세 곡의 노래는 세월의 흐름을 대변한다.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에 열광하던 1막의 청춘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을 듯한 모던록밴드 블러의 ‘Song2’와 데이빗 게타의 하이브리드 뮤직 ‘Sexy Chick’로 2, 3막을 여는 것은 다음 세대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이기심에 대한 음악적 은유이기도 하다.

1967년 19세 동갑내기 옥스퍼드 대학생 케네스와 산드라는 첫 만남부터 불꽃이 튄다. 남자의 형이자 여자의 애인이었던 헨리를 따돌리고 사랑에 빠진다. 자기와 쌍둥이처럼 닮은 존재에 끌려 제 3자의 상처를 돌아보지 않는 이기심이다. 20여 년이 흐른 1990년. 성공한 중산층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는 중년부부가 된 두 사람. 어느 순간 서로에게 얽매인 삶이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고 단박에 이혼을 선언한다.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이제 상대방을 돌아보지 않는 이기심이다.

그리고 2011년. 삼십대 후반임에도 자립하지 못한 딸이 어렵게 손을 벌린다. “자기들만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 후 사다리를 부숴버렸다”는 딸의 공격에 “우린 최소한 부모한테 빌붙지는 않았고, 없는 사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갔다. 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부자가 되길 바라느냐”고 받아치는 두 사람. 따뜻한 노후를 위해 자녀로부터 재산을 사수해야 함에 깊이 공감한 나머지 다시 사랑에 빠져 동반 세계여행을 기약한다. 자기의 분신조차 돌아보지 않는 지독한 이기심이다. “역까지 차 좀 태워달라”는 딸의 마지막 부탁조차 춤추느라 외면하는 엔딩은 이 무대가 철저히 피해자의 시선임을 되새긴다.

그러나 가해자도 할 말은 있다. 이기적인 부모를 원망만 하고 있는 나약한 자녀는 왜 저들처럼 자기 인생을 사랑하지 못한 걸까.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앞만 보고 달리다 내 인생 종쳤다”는 딸의 투정에 “왜 우리말을 들었느냐. 네 인생 네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거다”라는 궤변으로 응수하는 부모는 우리에게 인생은 “내 맘대로” 사는 게 정답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려면 꼭두각시처럼 부모의 지시대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터.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일 뿐이란 걸 작가는 주장하고 싶었나 보다.

주인공 케네스와 산드라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캐릭터로 부각시킨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했다. “내맘대로 살련다”는 안하무인적 인생관으로 점철된 산드라에 완벽 빙의된 전혜진의 호연은 부부간 연기대결에서 한판승을 거둔다. 톱스타 이선균이 막강한 티켓파워로 ‘배우의 힘’을 과시하긴 했지만, ‘배우중심의 연극’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웅변하는 것은 전혜진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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