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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몸에 전자코 대니 양 냄새 … 정신분열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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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25면

10년 전 필자가 미국 퍼듀대학 연구실에서 백발의 노교수를 만났는데 환자의 건강과 냄새의 관계를 연구 중이었다. 그는 성분 분석기 앞에 줄줄이 늘어선 노란 액체 샘플 중 하나를 열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 대장암 환자의 소변이었다. 기겁을 했다. 교수는 그러나 “오줌의 성분·양의 패턴과 질병의 종류, 질병의 진행 여부가 관계가 있다”며 “소변을 분석하면 병을 진단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의기양양했다. 그 냄새 나는 소변을 보면서 조선시대 어의들이 임금의 대변을 관찰하고 소변 냄새를 맡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미국 최고 연구실에서 진행 중인 아이디어는 500년 전 조선 왕궁에서 이미 실시된 것이 아닌가. 어깨가 으쓱했다.
하지만 조선시대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대에서도 냄새는 의료 진단의 한 방법으로 사용돼 왔다. 중국의 오래된 한의학에서 진료는 네 가지 감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적혀 있다. ‘보고’ ‘듣고’ ‘물어보고’ ‘만져본다’. 그중 ‘듣고 묻는’ 과정은 환자 구강의 이상뿐 아니라 구취로 병을 진단하는 중요한 의료술이었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③ 인공 냄새 센서

의사가 냄새 센서를 환자의 입에 대면 냄새 정보가 수퍼컴퓨터에 연결돼 질병을 예측, 진단할 수 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일러스트 박정주]

질병에 따라 생기는 냄새에 대한 최근의 임상연구도 많다. 일례로 정신분열증의 경우 뇌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 관련 효소 이상으로 인한 헥사노익산 때문에 양(羊)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 요로 감염이 있으면 휘발성 물질인 이소발린산으로 인해 소변에 고약한 오래된 윤활유 냄새가 난다. 사람의 날숨에는 몸 안 내부 세포의 대사와 관계있는 물질이 포함된다. 당뇨에는 아세톤, 유방암엔 프로판올, 낭포성 섬유증에는 이소프렌이 다량 포함돼 있어 각각 유성매직잉크, 소독용 알코올, 휘발유 냄새가 약하게 난다. 폐암도 시너 냄새가 나 70%의 정확도를 가지고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지바의대가 ‘개가 사람 몸의 냄새로 대장암을 진단할 수 있었다’고 한 의학 보고도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질병과 냄새 연구에 사용한 분석기기는 가스분석기와 질량분석기였다. 따로 사용하거나 함께 사용해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분석기는 휴대가 쉽지 않고 내용 분석도 어려워 별도로 분석 전문가가 필요하다. 좀 더 간편하고 정확하게 냄새를 분석할 수는 없을까.

범죄 영화에서 추적견은 추적의 종결자로 등장한다. 개가 코를 킁킁거리며 나타나면 관객들은 범인은 이제 끝났다고 여긴다. 머리 좋은 범인이라면 현장에서 자기 지문만 아니라 냄새도 지워버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판이다. 마약 탐지견의 후각은 인간보다 1만 배 정도나 예민하다. 냄새를 맡는 코 천장 부위 비강 면적은 인간의 76배이고 후각세포도 44배 많아 냄새 맡는 능력에선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마약 탐지견으로 활약하는 코커스패니얼이나 진돗개를 병원마다 데려다 놓고 진단에 동원하면 어떨까. 환자들 반응이 아무래도 썩 좋지는 않을 듯싶다. 게다가 1년 넘게 훈련시켜도 겨우 마약 한 종류만을 찾아내는 수준이어서 수많은 질병을 진단하기는 애초부터 그른 셈이다. 그러나 혹 마약 탐지견의 코를 닮은 정교한 전자코가 있으면 어떨까?

동물 코를 닮은 인공 나노 전자코
후각의 메커니즘은 이렇다. 코 속의 축축한 비강으로 들어온 기체 상태의 냄새 분자는 냄새 수용체(receptor)에 달라 붙는다. 수용체가 켜지며 전기 신호를 보내고 신호들은 모아져 뇌로 보내진다(사진 1). 2004 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런 후각의 원리를 밝힌 미국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연구 결과 같은 냄새는 같은 후각 수용체와 신경세포, 신경줄을 통해 모아지기 때문에 같은 냄새로 기억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우리가 1만 개 정도의 냄새에 대한 기억을 각각 구분해 가질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숫자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인체에는 냄새 수용체를 만드는 1000개의 후각 관련 유전자가 있지만 실제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는 이 중 350개다. 나머지 650개 유전자는 작동하지 않는다. 학계에선 진화 과정에서 350개만 발현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350개 수용체로 1만 개 냄새를 기억하려면 ‘1개의 냄새-1개의 수용체-1개의 후각세포’가 아니라 ‘1개 냄새-여러 개 수용체-여러 개 후각세포’가 돼야 한다. 바나나 냄새는 1·3·5 수용체, 사과향은 1·5·10·11 수용체라는 방식으로 수용체들이 중복되고 여러 다른 조합이 다양한 패턴을 만들며 신경에 전달되고 기억된다는 것이다.

낚시꾼들은 고기가 미끼를 물을 때 줄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의 짜릿함을 뇌 속 깊이 기억하고 그 때문에 ‘주말 과부’가 양산된다. 이 손맛의 신호는 3단계 과정을 거치며 전달된다. 고기가 미끼를 무는 단계, 파르르 물리적 진동이 생기는 단계, 낚싯줄을 거쳐 손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이다. 냄새도 같다.

냄새, 즉 휘발성 기체의 분자는 세포 외부로 돌출된 단백질 수용체와 특이한 물리적 결합을 한다. 그 과정에서 냄새에 들어 있는 양이온(예를 들어 Na, Ca)이 막의 내부로 들어간다. 평상시 전기·물질적으로 평형이던 막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깨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막에서 음 이온이 방출되는데, 그러면 다시 평형이 깨진다. 이런 현상이 도미노처럼 퍼지면서 전기 신호가 발생된다. 연못 구석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연못 가운데 한 방향으로 퍼져 나가는 것과 같다. 냄새의 신호 전달 속도는 초당 100m다. 그래서 곁을 스치는 여인의 향수에 남성들은 고개를 반사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거의 빛의 속도로….

전자코, 즉 인공 냄새 센서는 동물의 후각 시스템을 모방한다. 동물의 후각은 감지-전달-해석(후각세포-신경세포-뇌)의 3단계로 구성되며 전자코는 이를 ‘센서-신호 변환기-해석 장치’로 적용한다. (사진 3) 센서는 전자코의 연구개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인간은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기억
센서는 냄새 분자가 물질에 달라붙을 때 발생하는 변화를 활용하는데 반도체 방식, 전도성 고분자 활용 방식, 수정 진동자 활용 방식, 생체 수용체 방식이 있다. 기본 원리는 냄새 분자가 센서 물질에 달라붙을 때 발생하는 신호를 패턴화해 적용하는 것이다.

반도체 센서는 화학반응을 활용한다. 금속산화물로 덮인 반도체 분자 사이의 빈 공간으로 냄새 분자가 지나가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며 반도체 종류에 따라 다양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냄새 분자가 내는 신호는 냄새마다 제각각이어서 일종의 지문(finger print)처럼 활용될 수 있다. 반도체 센서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지문도 다양해지고 무슨 냄새인지를 가리는 정확도는 상승한다. 엄지 손가락 지문 하나보다 열 손가락 지문을 활용할 수 있다면 범인이 잡힐 확률은 엄청 높아질 것이다. 손가락들의 지문이 우연히 같다고 해도 열 손가락 지문이 같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도성 고분자 냄새 센서는 고분자 물질에 냄새 분자가 달라붙으면 저항과 전도도가 바뀌며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 현상을 활용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사용하는 우주선 내 냄새 측정기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수정진동자는 인위적으로 내부 진동을 발생시킨 수정(quartz crystal)에 냄새 분자가 붙으면 미세하게 무게가 변하고 이에 따라 진동수가 변화하는 현상을 활용한다.

최근 연구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생체 센서다. 서울대 박태현 교수팀이 장정식 교수 연구팀과 이 방식으로 생체 센서를 공동 연구하고 있다. 냄새 수용체에 냄새 분자가 달라붙으면 미세한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데 이를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해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체 센서는 반도체 센서, 고분자 센서보다 만들기가 복잡하고 따라서 안정성이 낮다는 단점도 있다.

이제 마지막 단계, 냄새 센서가 보낸 신호를 해석하는 과정이 남았다. 바나나 냄새 분자는 350개의 수용체 중 예를 들면 1·3·5번 수용체에 달라붙는데, 이를 후각 신경세포가 수집해 뇌로 보내고, 뇌는 이 정보를 바나나 냄새라고 인식하게 된다. 패턴화된 후각 기억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전자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냄새 센서에서 보내진 신호를 받아들이고 이를 이미 알려진 냄새 물질의 신호와 비교하면 무슨 냄새인지 알게 된다. 아~ 바나나 냄새구나.

이런 마지막 단계까지 거친 인공 전자코가 나오면 공항에서 마약 탐지견이 아닌 인공 전자코가 마약을 검색하는 풍경이 등장할 수 있다. 나아가 질병과 인체 냄새의 관계를 알아내 냄새만으로 질병을 진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의사가 “아, 입 벌리고 숨을 내쉬세요”라며 볼펜 크기의 전자코를 입에 대고 진단하는 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의사를 미덥지 않은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볼펜 내에는 마약견 수백 마리에 해당하는 후각 센서가 들어 있고, 이 센서들이 보내는 냄새 정보가 수퍼컴퓨터에 보내져 수천만 건의 질병-냄새 정보와 비교, 분석한다. 더 간단히, 더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더 빨리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데 냄새가 한몫 하는 때가 머지 않아 올 것이다. 그러길 기대한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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