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요거트제왕 한인 "안젤리나 졸리 찾아와…"

중앙일보

입력 2013.03.31 00:01

업데이트 2013.03.31 16:30

요거트랜드의 장준택(영어명 필립 장·50) 대표는 요거트를 닮았다. 달콤함을 얻기 위해 긴 숙성의 과정을 감내했다. 스물한 살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청년이 29년 뒤 연 매출 1억5000만 달러의 미국 요거트 업계 1위 기업을 만든 비결은 그간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벼락부자가 아니다. 스탁 보이, 피자 배달원, 빌딩 청소원을 전전했다. 5만 달러 빚을 안고 좌절할 때도 있었다. 크고 작은 실패에서 그는 몸으로 성공을 익혔다. PC 조립업체 실패로 자본의 중요성을, 버블티 사업에서 프랜차이즈 노하우를, 지금의 요거트 사업에서 사람 경영의 중요성을 배웠다. 지난해 700만 달러(약 77억7000만원)를 벌어들인 부자에게 어려웠던 시기를 물었더니 “고난보다 유혹이 더 견디기 어렵다”며 겸손해 했다. LA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을 달려 찾아간 어바인 본사에서 그와 만났다.

혹독했던 20대 이민 생활

옥수수로 만든 친환경 숟가락.

 그에게도 이민 적응기는 혹독했다. 서강대 수학과 82학번인 그는 대학 3학년이던 1984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버지의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영어 못하고 기술 없으니 육체노동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바느질을 하고 그는 동네 수퍼마켓에 스탁 보이(물건 채워넣는 직원)로 취직했다.

  시급 4달러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해 투잡을 뛰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빌딩을 청소했다. 하루 16시간 일을 마치고 동틀 녘이 돼서야 귀가해선 책을 봤다. 매일 2~3시간씩 컴퓨터를 독학했다.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경야경효(曉)독이었다.

 - 힘든 시기였다.

 “이민 오면 누구나 겪는 과정 아닌가. 2년을 그렇게 일했다.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버님 병도 고쳤고, 서른 전까지 100만 달러를 벌겠다는 당찬 꿈도 꾸고 있었다.”

 가르쳐 주는 이 없었지만 공부는 결실을 맺고 있었다. 대한항공 기내음식 하청업체에 사무보조로 취직했을 때다. 승객 수에 맞게 클래스와 계절별로 메뉴를 공급하는 첫 자동화시스템을 만들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직접 컴퓨터 사업을 해보자 뛰어들었다.

 - 첫 사업이었다.

 “만만히 본 대가가 너무 컸다. LA 한인타운에서 PC 조립업체를 시작했는데 2년 만에 망했다. 부품값 변동이 너무 심했다. 값이 떨어지면 미리 사두고 비쌀 때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자본이 없었다. ”

 좌절은 컸다. 사업을 접고 염색공장 전산 담당자로 취직했지만 빚은 줄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지 않던 때였다. 돌아보면 빚이 문제가 아니라 희망이나 목표가 없어 위기였던 것 같다. 술 마시며 허송세월했다.”

 첫 사업에서 배운 건 여유자본의 중요성이었다. 돈 없이 사업하는 어려움이 머리에 각인됐다. 자금이 없으면 투자를 못하고, 투자 없이는 동네 요거트 가게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장 대표 표현으로는 ‘바닥’이었던 인생에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찾아왔다. 아내를 만났다. 일하던 공장에 융자 담당자로 찾아온 두 살 아래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1년을 구애했다. 장인은 목사였다. 아내는 신앙을 다시 찾도록 격려했고, 그는 약속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싶더라. 그때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생각이 바뀌니 시각도 바뀌었다. 계속 보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염색공장 재고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그램만 개발하면 인력과 시간을 3분의 1까지 단축시킬 수 있었다. 염색공장을 그만두고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렸다. 석 달 만에 개발한 첫 프로그램을 2만 달러에 팔았다. 이후 10여 개 공장에 맞춤형 프로그램을 팔았다. 이민 10년 만에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버블티로 성공을 연습하다

 목돈을 만지기 시작했지만 평생 이 일만 할 순 없었다. 내 장사를 하고 싶었다. 우연히 차이나타운에서 맛본 버블티에서 가능성을 봤다. 한번 먹고 나니 자꾸 먹게 됐다. 중독성 있는 맛에 이걸 해보자 싶었다. 그 후 1년 반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사업 컨셉트를 찾으려고 50개 업소를 찾아다녔다. 프로그래머 장기를 살려 모든 걸 데이터로 뽑았다. 매장 위치, 이동 인구, 업소 운영 방식, 동선에 매장 직원의 생김새까지 30~40개 항목을 정해 각각 등급을 매겼다.

 - 기존 프랜차이즈와 어떻게 차별화했나.

 “고백하자면 ‘롤리컵’에서 버블티를, ‘잠바 주스’에서 과일 스무디를,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등 3개 프랜차이즈의 장점만 뽑아냈다. 실내 장식과 컵도 커피전문점처럼 갈색 톤을 사용해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줬다.”

 그렇게 ‘보바 로카(Boba Loca)’가 탄생했다. 이름도 리듬을 살렸다. 2001년 9월 LA 한인타운에 1호점을 열었다. 12만 달러를 투자했다. 야심 찬 시작이었지만 첫 시련이 오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을 연 지 일주일 만에 9·11 테러가 터졌다. “휘청했다. 석 달간 가게가 썰렁했다. 다행히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꾹 참고 기다렸더니 이듬해부터 서서히 손님이 모여들었다.”

 이듬해 연매출이 8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장을 33개까지 늘렸다. 하지만 3년째 접어드니 매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백인들은 버블티를 싫어한다는 뜻밖의 결론이 나왔다. 떡을 맛본 적 없는 백인에게 쫀득거리는 보바는 익숙해지기 힘든 맛이었다. 주류시장을 목표로 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했다.

 아이스크림을 염두에 두던 그는 요거트에 주목했다. 몸에 좋은 음식으로 머지않아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거라고 판단했다. 다시 컨셉트를 짜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했더니 미국인들이 요거트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시큼한 맛 때문이었다. 상한 거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맛을 달달하게 바꿀 필요가 있었다. 재미도 가미해야 했다. 어느 날 동네 요거트 가게에 갔다가 카운터 뒤에 나란히 놓인 요거트 기계를 보고 무릎을 쳤다.

 “카운터를 밀고 손님이 직접 요거트를 내려 먹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무게로 달아 파는 샐러드바의 개념도 도입했다.” 셀프서비스 매장이다 보니 인건비가 절감됐고, 그 돈을 기존 요거트 업소엔 없는 과일 토핑에 투자했다. 2006년 2월 풀러턴의 버블티 매장 한쪽에 시험 삼아 기계 8대를 들여놨다.

 - 셀프서비스 요거트에 대한 반응이 어땠나.

 “손님들에게 먹는 법을 일일이 교육시켜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다들 너무 재미있어 하더라. 한번 찾은 손님이 식구·친구를 데려와 먹는 법을 가르쳐줬다. 신나 하더라. 이거다, 비전 있다 싶었다.”

금융위기에도 문 닫은 매장 한 곳뿐

 마음의 결정을 내리니 행동은 빨라졌다. 보바 로카를 정리하고 2007년 5월 어바인에 40만 달러를 투자해 요거트랜드를 열었다. 소득이 높고 교육열이 뜨거운 어바인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아이스크림 대신 건강식 요거트를 먹였다.

 - 성공에 자신이 있었나.

 “자신은 있었는데 나도 놀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물밀듯 밀려온다는 말을 실감했다. 월매출을 8만 달러로 잡았는데 첫 달에 20만 달러를 팔았다.”

 손님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내고 싶다는 지원서가 첫 달에만 2000장이 쌓였다. 일일이 다 볼 수 없어 순자산 200만 달러 이상 신청자에게만 프랜차이즈를 내줬다. 가맹점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7년 2개, 2008년 28개에서 지금은 220개에 달한다. 미국 내 18개 주를 비롯해 멕시코·베네수엘라·호주에도 문을 열었다. 지난 한 해에만 3900만 명이 요거트랜드를 찾았다.

할리우드 스타들도 그 맛에 사로잡혔다.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커플을 비롯해 샤론 스톤, 린제이 로한, 마일리 사이러스, 데이비드·빅토리아 베컴 커플, 킴 카다시안, 데비 라이언, 조 조나스 등 수많은 스타들이 요거트랜드의 단골 고객이다. 이들은 종종 자신만의 레시피를 페이스북 등에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폐업한 매장은 하와이 1곳뿐. 매장당 평균 매출은 75~80만 달러, 순수익은 최소 15만 달러에 달한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금융위기 속에서 요거트랜드의 성공은 기적에 가깝다. 비결을 물었다.

 - 불경기를 비웃는 숫자들이다.

 “경기와 사업은 연결되지 말아야 한다. 내 안에서 동력을 만들지 않으면 오래 못간다. 연구개발팀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 다.”

 - 위기는 언제였나.

 “정상에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최근 2~3년이 위기였다. 겉으론 성공한 듯 보였지만 안에서는 곪고 있었다. 급성장을 하다 보니 사람을 급히 뽑았다. 공사 담당자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하질 않나, 직원들 근무 태만이 곳곳에서 보였다. 정리를 해야 했다.”

 요거트랜드는 창사 이후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자율경영을 하고 있다. 권장 근무 시간은 있지만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한다. 그 부작용이 회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설명이다.

 - 어떻게 정리했나.

 “지난 3년간 직원 60명 중 90%를 물갈이했다. 부사장도 해고했다. 실력은 최고였지만 고압적이고 부하 직원을 존중할 줄 몰랐다.”

 - 직원들 불만은 없나.

 “우리 회사의 좋은 점 중 하나가 ‘360도 평가’다. 6개월마다 직원들이 나를 평가한다. 30개 항목에 1~5점까지 내 점수를 매긴다. 또 그만뒀으면 하는 점, 새로 시작했으면 하는 점들을 직접 쓰게 한다. 객관성과 익명성 보장을 위해 설문조사와 분석은 외부 업체에 맡긴다.”

 - 기억에 남는 지적이 있나.

 “특정 직원만 편애한다, 점심식사를 그 사람들 하고만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미안했다. 전 직원 앞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4점 아래로 내려가진 않았다(웃음).”

 신뢰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스티븐 코비의 『신뢰의 속도(Speed of Trust)』를 경영 교과서로 삼고 있다. 이 책을 기본으로 ‘THTK’라는 사내 윤리도 만들었다. ‘Totally Honest, Totally Kind(솔직하고 친절하라)’다.

 - 신뢰는 어떻게 얻는가.

 “사장이 돈을 버려야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사실 고난보다 유혹이 더 견디기 어렵다. 더 비싼 집과 차, 옷과 음식. 누리자면 끝도 없다. 나 자신과 매일 끝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어디까지 내가 버릴 수 있는지.”

 - 직원들에게 돈은 많이 주나.

 “지난해 연봉 8만 달러인 직원에게 21만 달러의 연말 보너스를 지급했다. 스톡옵션도 준다. 내가 가진 지분 1000만 주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우리 회사는 투자나 융자를 받지 않았다. 빚이 없으니 순익이 그만큼 많다. 현재 회사 가치가 6000만 달러 정도인데, 주당 6달러꼴이다. 전 직원에게 1인당 100만 달러 가치의 주식을 나눠주는 게 목표다.”

 - 지역별로 매장의 특성이 있나.

 “소득이 높은 지역은 단맛을 싫어하고, 낮은 지역은 달달해야 좋아한다. 또 뉴욕은 서비스 질보다 속도를 더 중요시한다. 빨리 계산해서 빨리 나가길 원하더라.”

 - 한국 진출 계획은.

 “유명 대기업들을 비롯해 사업 제안이 많다. 한국은 독특한 시장이라 조심스럽다. 중소기업과 파트너를 맺고 싶은데 대기업의 견제가 워낙 심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 가족은.

 “아내와 외동딸이 있다. 딸은 12살인데 잘 컸다. 여유 있는 부모 밑에서 뭐든 살 수 있는데도 그렇지 않다. 방에 불을 켜놓고 나오면 난리가 난다. 우린 매일 가정예배를 본다. 집에 TV도 없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많다.”

 - 회사가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라 믿는가.

 “요거트는 발효해야 한다. 이제야 우린 익어 가고 있다. 사내에 건강한 조직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성공은 지금부터다.”

정구현 LA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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