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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맹장염, 소화 안되는 음식 먹어서 생긴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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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그래픽=박향미
이성호 천안의료원 진료부장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 중 외과적 수술을 요하는 가장 흔한 증상은 오른쪽 하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다. 바로 흔히 말하는 ‘맹장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맹장염이 아니라 ‘충수염’이지만 과거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돼 의사도 환자에게 맹장염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착화 됐다.

소화기관 중 소장에서 대장으로 이행되는 부위에 맹장이라고 불리는 소화기관이 있고 맹장에 붙어있는 얇고 긴 주머니가 충수다. 바로 이 충수라는 작은 기관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장염이다. 따라서 충수염이라고 부르는 것이 의학적으로 맞는 용어다. 의학적 용어의 정확성이 문제가 아니라 용어의 정확성만큼이나 충수염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것을 임상을 하면서 알게 됐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충수염이 잘못된 식이 습관 또는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의 섭취에 의한 질환으로 알고 있으나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충수 주위의 임파조직이 과다 증식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60%), 딱딱한 변이 충수 입구를 막는 경우(35%)가 대부분이다. 증상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임상적으로 병이 진행돼 복막염이나 충수 주위농양으로 진행한 후에 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충수염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체 환자의 절반 정도는 전형적인 질환의 양상을 나타내므로 외과 의사가 아니라도 쉽게 질환을 의심할 수 있지만 비 특이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외과 의사라 하더라도 간단한 진찰만으로 쉽게 질환을 의심하기가 어렵다.

우선 ‘충수염이 오면 우 하복부에 통증이 심해 잘 걷지도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나 실제로 충수의 위치가 후 복막에 위치한 경우는 천공이 되기 전까지 심한 통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적인 증상은 매스꺼움과 구토가 있으면서 배꼽주변이 아프다가 오른쪽 하복부에 통증이 발생하는 것이지만 이런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절반이 되지 않는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고 성인과 달리 장 간막이라는 기관이 발달되지 못해서 충수염 천공시 복막염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증상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충수염의 진단을 매우 쉽게 알고 있으나 실제 임상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급성 충수염을 진단할 때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이 ‘맥버니 포인트’(배꼽과 우측 골반 앞부분에 튀어나온 뼈를 연결한 가상의 선에서 바깥쪽 3분의 1지점)를 눌렀을 때 압통과 반발통의 유무다. 요즘은 영상 장비의 해상도 및 정확도가 높아져 컴퓨터 단층촬영이나 초음파 검사를 시행해 진단율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검사 후에도 수술적 치료를 위한 근거가 부족할 경우 입원해 경과를 관찰하기도 한다. 급성 충수염의 치료는 수술이 원칙이다. 충수염 수술의 결과와 합병증 발생 정도는 질환의 진행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복강경을 통해 별 것 아닌 수술로 끝나지만 천공에 의한 농양이 생긴 경우는 복막염이 생겨 수술이 커질 뿐 아니라 회복기간이 길어지고 패혈증, 장유착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아도 잘 모르는 것이 충수염이다. 아마 흔하기도 하고 그만큼 치료 성과가 좋아지면서 생긴 인식인 것 같다. 하지만 잘못된 상식으로 병을 키우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성호 천안의료원 진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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