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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대면 문이 스르륵 … 편안함을 열어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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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자개장에 기계장치를 더해 사용하기 편하게 리모델링한 자개장. 3단 문갑을 해체한 후 기계장치를 더했다. 김윤수 본디자인 대표 작품이다. [사진 본디자인]

집은 쉼터다. 어려서나 늙어서나 마찬가지다. 아니, 나이 들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집주인의 개성과 무관하게 겉만 번드르르한 인테리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많은 집이 살기 편한 곳이 아니라 남 보기에만 좋은 곳이 돼버렸다. 내가 지금 가장 편하게 느끼는 곳, 바로 내 집에서 은퇴 후 삶을 살고 싶다는 사람이 늘면서 실버를 위한 인테리어의 개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개성이 아닌, 집주인의 추억을 살리면서도 편안한 공간으로 말이다.

윤경희 기자
도움말=최시영 애시스 디자인 대표, 김윤수 본디자인 대표, 홍상아 바오미다 실장, 조희선 꾸밈by조희선 이사

시니어(노년층) 공간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편리함이다. 체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좋지 않은 노인의 신체적 특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배려도 필요하다. 멋은 그다음 이야기다.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 (애시스 디자인)대표는 “시니어를 위한 공간을 만들 때는 모든 것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집 안 모든 가구나 기기들을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사용하는 형태로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기존 공간에 간단한 장치를 더하거나 가구 구성을 조금만 바꿔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예컨대 무릎 건강을 생각하면 거실엔 소파, 침실엔 침대를 놓는 게 좋다.

 화장실·욕실에도 동선 곳곳에 손잡이를 달거나 접이식 의자를 달면 생활이 한결 편해진다. 홍상아 바오미다 실장은 “문을 여닫이 형태에서 미닫이로 바꿨더니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고 좋아하시더라”며 “크게 힘주지 않아도 문이 스르르 열리는 미닫이문이 노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이 주목받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행동에 불편이 없는 일반인뿐 아니라 노인·장애인·어린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한 디자인을 말한다. 국내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하면서 특히 노인의 주거공간에 도입하는 추세다. 특히 일본이 앞서 있다. 국내에도 이를 도입한 아파트가 일부 있지만 아직은 미끄럼방지 바닥, 비상호출 시스템 등을 설치한 것 정도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시니어 공간에 대한 전문자료가 국내엔 거의 없다”며 “아직은 일본 자료를 보고 응용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자개장의 자개 부분만 따로 모아 침대 헤드 장식을 만들었다. [사진 본디자인] ②③ 욕실은 다치기 쉬운 공간이다. 욕조나 변기 도기 옆에 손잡이를 달거나 샤워부스 안에 접이식 의자를 설치하면 한결 사용하기 편리하다. 세면대와 도기는 가급적 모서리가 둥근 것을 선택해 부상 위험을 줄인다. [사진 바오미다]

 그렇다면 국내의 실버 인테리어는 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국내의 공간디자이너,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에게 시니어를 위한 공간을 제안해 달라고 하자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세대니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지금 사는 공간에 일부러 돈을 들여 뭘 고치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오미다 홍 실장은 2년 전 겪은 일을 말해줬다. 당시 40대 자녀가 70대인 부모 집 전체를 모던하게 고쳐달라고 의뢰했단다. 그런데도 “안방만은 예전 그대로 두고 싶다”고 주문했다. 홍 실장은 “시니어 공간엔 노부부 외에도 가족의 추억이 많아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애시스 디자인 최 대표도 “시니어 공간을 의뢰받으면 반드시 지금 사는 집을 보여달라고 해 직접 가본다”며 “기존 생활방식을 먼저 이해해야 실패가 없다”고 말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전부 새로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일부 가구만 바꿔도 공간이 확 달라진다. 보통 시니어가 갖고 있는 가구는 제 기능을 잃거나 현재 생활패턴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장롱이다. 요즘은 침대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불장 위주로 짜인 장롱은 거추장스럽다. 과감하게 장롱을 없애고 서랍장을 들이거나 드레스룸을 설치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장롱 자체도 아깝지만 그 안에 켜켜이 쌓아놓은 물건을 둘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조희선 이사는 “갖고 있는 짐 정리가 먼저 필요하다”며 “버리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한곳에 수납공간을 만들어 모아두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한때 자타공인 ‘혼수1호’였던 자개장은 현대식 주거공간과 어울리지 않아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김윤수 본디자인 대표는 최근 한 인테리어 페어에서 3단 자개장을 현대식으로 다시 디자인한 화장대와 세면대를 내놔 이목을 끌었다. 리모컨 조작으로 수납장이 자동으로 상하로 움직이도록 해 장에 물건을 넣고 빼느라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고, 화장대 거울도 사용 후에는 자동으로 장 안에 넣을 수 있게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랍은 손만 가볍게 대도 스르르 튀어나온다.

 그는 “시니어를 위해선 아름답게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다”며 “기계장치를 넣어 적은 힘으로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부모의 자개장을 활용하고 싶다는 젊은 세대의 호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개장을 이렇게 리폼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다. 이번 작업도 그의 첫 번째 시도였다. 비용은 장 크기나 디자인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이 든다.

 최 대표는 “자개장이나 고가구를 활용하고 싶다면 장을 해체해 장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라”고 귀띔했다. 장롱 문만 떼어 미닫이문이나 테이블, 벽 한쪽을 장식하는 발처럼 만드는 방식이다.

 오래된 가구를 리폼하지 않더라도 잘만 배치하면 집 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조 이사는 “안방에 몰아넣은 장롱·화장대·문갑·반닫이를 다른 방에 하나씩 나눠 배치하라”고 제안했다.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있는 고풍스러운 가구는 포인트 아이템으로 제격이다. 이때 벽지나 함께 배치하는 가구는 최대한 단순하고 모던한 것이 좋다.

④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가구는 단순하고 모던한 벽지나 바닥에 놓아야 세련되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벽엔 전에 쓰던 오래된 창문이나 문을 장식으로 달면 분위기가 산다. ⑤ 고가구를 원래 기능과 다르게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불·옷을 넣어놨던 반닫이나 문갑을 현관 앞에 놓고 위에 화분 등을 올려놓으면 훌륭한 코너장이 된다. 세트로 안방을 차지했던 자개장·화장대·문갑을 하나씩 다른 공간에 포인트 가구로 배치하면 집 전체가 통일감이 있으면서도 멋스럽게 탈바꿈한다. ⑥ 무엇이든 큰 힘 들이지 않고 작동할 수 있어야 생활이 편해진다. 슬쩍 밀어서 여닫을 수 있는 미닫이문은 만족감이 높은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다. 또 문턱을 없애면 거동이 불편해도 드나들기 쉽다. 사진은 50대 부부의 복층 아파트를 개조하면서 만든 미닫이문. [사진 바오미다]

시니어 인테리어 노하우 5
아파트에선 고풍스럽게 꾸미면 답답, 가족사진은 자투리 벽에…

#1 취미 공간 만들기

시니어는 집 안에 즐길 공간이 필요하다. 취미가 곧 생활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대개 서재(라이브러리)나 오디오룸을, 여성은 화초를 기를 수 있는 화원을 원한다. 서재나 오디오룸은 방 하나를 따로 온전히 그 공간으로만 활용한다.

화원은 베란다에 장식장 기능이 있는 수납장만 짜도 꾸밀 수 있다. 화초가 많을 때는 단순한 디자인의 화분으로 분갈이만 해도 공간이 금방 세련돼 진다.

#2 거실·식당을 가족공간으로 만들기

시니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거실이나 식당(다이닝룸)을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 식탁이 작아 온 가족이 둘러앉을 수 없다면 간이 식탁을 하나 더 놓고 평소엔 수납 테이블로 사용한다.

#3 가족사진 거는 갤러리 공간 만들기

시니어는 가족사진을 애지중지한다. 문제는 세련되게 배치하기 어렵다는 점. 거실 벽면 한가운데 걸기보다 방과 방 사이 자투리 벽에 간단한 선반이나 조명을 설치한 후 갤러리처럼 꾸미면 집안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으면서 세련되게 연출할 수 있다. 또 오가며 자주 볼 수 있어 만족도도 높다.

#4 자개장·고가구 나눠서 배치하기

공사 없이 가구 배치만 바꿔도 근사한 인테리어로 탈바꿈할 수 있다. 안방에 세트로 넣어놓은 자개장·화장대·문갑을 각각 다른 공간에 배치하는 방법이다. 기존 용도를 다른 기능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도 좋다. 예컨대 안방엔 장만 놓고 문갑은 거실로 꺼내 코너장이나 테이블로 사용하는 식이다. 이때 벽지나 함께 배치하는 다른 가구는 단순하고 문양이 없는 것으로 해야 좋다.

#5 아파트선 전통 가구는 한두 개만 놓기

좁은 아파트에선 전통적 느낌을 준다고 전체를 다 고풍스럽게 꾸미면 더 답답해 보인다. 책상이나 장식장 등 한두 가지만 포인트로 둔다. 벽지도 한지 느낌보다 섬유질감이 나는 지사벽지를 사용하면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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