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학교 순위 뜯어보기] 영국 보딩스쿨, 총리ㆍ사상가 등 숱한 인재 배출

중앙일보

입력 2013.03.13 04:00

업데이트 2014.11.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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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학교 건물만 봐도 영국 보딩스쿨의 수백 년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학교도 100년은 넘었다. 1858년 설립된 배드민턴 스쿨(옥스브리지 진학률 9위) 교정을 학생들이 걷고 있다. [사진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보딩스쿨(기숙학교)하면 미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보딩스쿨 역사는 사실 영국에서 시작했다. 미국 유명 사립고교는 대개 영국 청교도가 미국에 정착하면서 자녀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다. 문화에 대한 존중과 수준별 수업으로 대표되는 수월성 교육, 스포츠·음악 등 다양한 팀 활동을 통한 자기 계발, 협력심과 리더십을 강조하는 인성교육까지 보딩스쿨의 교육철학은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보딩스쿨의 원조격인 영국 보딩스쿨의 요즘 모습은 어떨까.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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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이 보도한 각종 순위와 주요국 사립학교 순위를 매기는 인터넷 사이트 프렙리뷰닷컴(PrepReview.com)을 통해 영국 보딩스쿨의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진학률(최근 5개년 평균) 상위권 학교를 분석했다. 옥스브리지는 미국 하버드·예일·MIT 등과 함께 세계 최고 명문대로 꼽힌다. 지난해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와 함께 발표하는 지난해(2012) QS 세계대학 평가에서 케임브리지는 2위, 옥스퍼드는 5위에 올랐다. 옥스브리지 진학률로 명문 고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을 삼는 이유다.

공원 같은 세븐옥스 스쿨(옥스브리지 진학률 8위)의 학교 전경.

 조사 결과 영국 사립고교가 상위권을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 등 미국 아이비리그 8개 대학과 MIT·스탠퍼드 진학률에서 미국 사립고교가 두각을 나타낸 것과 비슷하다. 옥스퍼드대 학생 신문인 ‘옥스퍼드 스튜던트’가 2009년 신입생 3034명의 출신 고교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웨스트민스터 스쿨 런던이 47명, 세인트폴스 스쿨 런던(남학교, 이하 남)이 40명, 이튼 칼리지 37명, 세인트폴스 걸스 스쿨 런던(여학교, 이하 여) 35명, 위콤 아베이 스쿨이 23명이었다. 영국 사립 고교가 나란히 1~5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중 세인트폴스 걸스 스쿨 런던을 제외한 4곳이 모두 보딩스쿨이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스쿨의 옥스브리지 진학 성적이 독보적이다. 이 학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발표한 2012학년도 영국 고교랭킹에서도 1위에 올랐다.

 프렙리뷰닷컴이 분석한 영국 보딩스쿨의 옥스브리지 진학률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웨스트민스터는 최근 5년간 졸업생 절반 가까운 44%를 옥스브리지에 입학시키며 1위에 올랐다. 국내에서 영국 보딩스쿨 명문으로 알려진 이튼 칼리지는 30%로 4위였다. 이 두 학교 사이엔 윈체스터 칼리지(2위, 40%)와 세인트폴스 스쿨 런던(3위, 39%)이 있었다. 옥스퍼드 인근에 위치한 헤딩턴 스쿨은 졸업생 9%를 옥스브리지에 보내 30위를 차지했다. 적어도 졸업생 열 명 중 한 명은 옥스브리지에 보내야 영국 보딩스쿨 순위 30위권에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보딩스쿨이 계속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미국 보딩스쿨이 하버드·스탠퍼드 진학률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에선 데이스쿨(사립 통학학교)이 보딩스쿨을 누르고 대거 상위권에 올랐다. (江南通新 2월 27일자 10~11면 참조 )

 그러나 영국 보딩스쿨·데이스쿨을 합쳐 옥스브리지 진학률을 조사한 자료에서는 데이스쿨인 세인트폴스 걸스 스쿨 런던과 옥스퍼드 하이스쿨이 각각 1,3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랭킹 5위 중 3곳이 보딩스쿨이었다.

 서동성 edm런던유학닷컴 대표는 “옥스브리지 진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A레벨(영국 대학입학시험) 성적과 인터뷰”라며 “영국 사립 고교는 학급당 인원 수가 평균 15명 안팎이라 보딩스쿨이건 데이스쿨이건 A레벨 시험 준비에 필요한 학업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용인외고 졸업 후 옥스퍼드에 진학한 이승윤(정치철학경제학과 3)씨도 “옥스퍼드는 외국인 학생에 대해서도 IB디플로마(세계 150개국에서 활용되는 대학입학시험)나 대학과정 선이수제(AP·Advanced Placement)와 같은 시험성적을 중요하게 본다”며 “1차 서류평가에서 비(非) 교과 요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튼 칼리지를 나온 윌리엄 왕자, 조지 오웰, 이언 플레밍(왼쪽부터)

 영국 총리 17명을 배출한 이튼 스쿨을 포함해 영국 보딩스쿨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튼 칼리지를 거쳐 옥스퍼드에 들어간 김우재(19·역사경제학과)씨는 “이튼에선 늘 학교 전통과 역사에 대해 강조한다”며 “단지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바로 사회의 리더다’라는 사명감과 자신감을 학생에게 불어넣는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학교에 들어간 첫날 선생님이 졸업생 이름이 새겨진 벽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영국 총리가 됐고, 이 사람은 유명한 학자가 됐다, 너는 오늘부터 어떻게 저 벽에 네 이름을 올리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그런 교육이 미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윈체스터 칼리지의 전쟁 기념회랑은 이런 영국 보딩스쿨이 갖는 소명감과 자부심, 역사와 전통에 관한 존중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랑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윈체스터 동문 750여 명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 기숙사와 수업을 받는 교실 사이 길목에 위치해 있다. 윈체스터 학생은 매일 이 회랑을 지나면서 선배 이름을 되새긴다.

 영국 보딩스쿨의 이 같은 교육 방침은 수백 년을 이어온 학교 역사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웨스트민스터는 1560년에, 윈체스터·세인트폴스 스쿨 런던·이튼은 각각 1382년, 1509년, 1440년에 세워졌다.

 이들 학교가 역사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니다. 늘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한다. 교육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 소장은 “2007년 세븐옥스 스쿨(프렙리뷰닷컴 영국 보딩스쿨 8위)을 방문했다”며 “600년 넘은 학교라 보수적 학풍이 지배할 줄 알았는데 학생을 위해 실내 암벽타기 시설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노력하는 게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이튼 졸업생 김우재씨는 “이튼은 아직도 판서(板書·칠판에 글쓰기)를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보수적인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교사가 많지만 수업 내용은 절대 보수적이지 않다”며 “예체능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수준별 수업을 하고 심지어 수학은 학년마다 수준별로 14개반으로 나뉜다”고 전했다. 학업 능력 차이를 인정하되 누구에게나 기회를 열어두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준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수월성 교육과 기회의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영국 보딩스쿨은 협동·협력, 그리고 책임이 따르는 자율성도 중시한다. 다운하우스 스쿨(프렙리뷰닷컴 영국 보딩스쿨 23위) 졸업생 김보민(22·런던)씨는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온 것처럼 기숙사 동별 대항전이 기억에 남는다”며 “12학년 때 기숙사별 연극 대항전을 했는데 동기들끼리 감독·프로듀서·배우 역할을 나눠 오디션은 물론 홍보 포스터와 연극 세트 준비까지 해냈다”고 말했다.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회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셈이다. 2010년 한국을 방문했던 토니 리틀(Tony Little) 이튼 스쿨 교장도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이튼은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교육을 통해 리더를 양성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스포츠·음악·미술 등 다양한 자기 계발 기회를 준다는 점도 영국 보딩스쿨의 자랑거리다. 영국 보딩스쿨의 캠퍼스 규모와 시설은 웬만한 대학 캠퍼스를 능가한다. 공식 대회가 가능할 정도의 육상 경기장과 실내 체육관, 소규모 운동장이 캠퍼스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기숙사 대항전이나 학교 간 대항전이 학교 중요 행사로 자리잡기도 한다. 1805년부터 열려 온 이튼 칼리지와 해로 스쿨 간 크리켓 대항전은 두 학교 모두에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다. 이튼은 축구·럭비·유도는 물론 패러글라이딩과 스피드 보트 등 다른 학교에선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제공한다. 김우재씨는 “이튼 학생에게 스포츠와 음악활동은 학교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며 “누구도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고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스포츠가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활동 속에서 성취감을 얻으며 자신감을 기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명문 보딩스쿨은 60~100여 개에 이르는 방과후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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