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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스필버그의 정치9단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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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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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정치천재다. 그의 정치적 삶은 다층(多層)적이다. 관대함과 잔인함, 소박함과 위대함, 순교자적 고결과 마키아벨리적 노회(老獪), - 링컨의 지도력은 그 대칭적 경계를 넘나들며 작동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Lincoln)’은 그 리더십을 추적한다. 영화는 수정헌법 13조(노예제 폐지)의 하원 통과 과정을 다룬다. 그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치게임이다.

 무대는 1865년 1월 워싱턴 정가. 전쟁은 링컨의 북군 승리로 기울었다. 링컨은 재선 대통령이다. 링컨의 여당(공화당)은 다수당이다. 하지만 여당 전원이 찬성해도 헌법수정 정족수(3분의2)에 미달이다. 20표가 부족했다(전체 182명). 야당 민주당은 남부 정부와의 평화 협상을 앞세운다. 당 차원의 타협·양보는 불가능하다. 여당은 강온파로 갈려 있었다.

 영화 도입부는 처참한 전선이다. 링컨 집권 동안 미국은 내전(Civil War)에 시달렸다. 남북전쟁의 내전 전사자는 4년간 62만 명. 피의 도살(屠殺)이었다.

 전선에 나간 링컨(대니얼 데이 루이스),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외우는 사병들 모습이 이어진다. 연설은 짧다. 272개 단어다. 링컨의 그 연설은 대통령 언어의 정수다. 권력언어는 대중 동원의 유효한 수단이다.

 링컨은 임기 중반에 노예해방선언문을 내놓았다. 그것은 대통령의 전시 대권에 의한 임시방편이다. 종전 후 법의 재해석을 받을 수 있다. 링컨은 결심한다. 전쟁 종료 전에 헌법적 보호 장치를 완성하기로 했다.

 링컨의 의회 전략은 다양하다. 설득과 회유, 소통과 압박이 함께 전개된다. 우선 공략 대상은 야당의 레임덕(lame duck) 의원들. 그들은 선거에 떨어졌지만 임기가 두 달쯤 남아 있다. 그들을 당 노선에서 이탈시켜야 한다. 정치 변절의 대가는 낙하산 임명직이다. 그것은 밀실 정치다. 국무장관 슈어드(William H. Seward)가 막후 해결사를 관리한다. 슈어드는 링컨의 정적이었다. 이제는 세련된 충성파다.

 링컨은 설득의 정공법에도 주력한다. 그는 밤늦게 야당 의원 집을 찾아간다. 어둠 속 문 앞, 링컨의 소통 리더십은 강렬하게 펼쳐진다.

 그는 당내 온건파도 만족시켜야 했다. 온건파 보스는 블레어(Francis P. Blair)다. 블레어는 남부와의 종전 협상을 자원했다. 링컨은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 도박이었다. 협상이 알려지면 그동안의 노력은 헝클어진다. 야당의 반격을 받게 된다. 선택의 기로다. ‘평화냐, 노예제 폐지냐’-.

 링컨은 상호 모순되는 카드들을 올려놓는다. 판은 커진다. 거기에 완급(緩急)·경중(輕重)을 매긴다. 그리고 역설과 반전으로 돌파한다. 그것은 링컨의 승부 방식이다. 스필버그의 감수성은 폭발한다.

 링컨은 강경파도 무마한다. 스티븐스(Thaddeus Stevens, 토미 리 존스)는 급진 노예 폐지론자다. 그의 완승자세는 민주당의 경계심을 키운다.

 대통령의 설득언어는 매력적이다. “나침반은 정북의 방향을 가리켜준다. 그 길에 있는 늪, 사막과 협곡을 알려주지 않는다.” 스티븐스는 흑백의 무조건적 평등에서 후퇴한다. ‘법 앞의 평등’으로 완화한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투표 순간의 긴박감을 높인다. 평화 협상이 장애물로 등장했다. 야당은 협상의 진위를 물었다. 링컨은 “(남부 정부) 대표단이 워싱턴에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부에 들어와 있었다. 교묘하게 거짓을 피했다. 그 순발력은 마키아벨리의 ‘좋은 거짓말’을 연상시킨다.

 법안은 통과된다. 2표 차다. 스티븐스는 이렇게 묘사한다. “19세기 가장 위대한 법안은 부패로 통과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의 교사(敎唆)와 방조(aided and abetted)로.” 부패, 꼬드김의 어두운 어휘-. 그 장면은 스필버그가 포착한 정치 9단 링컨의 또 다른 진실이다. 고귀함을 실천하는 링컨 정치의 이중성이다.

 정치는 진흙탕이다. 위대한 역사는 진흙탕에서 만들어진다. 링컨 정치는 정공법과 변칙의 혼합이다. 용기와 단호함, 일관성은 추동력이다. 세련된 악역의 참모도 있다. ‘링컨’에서 사병들과 격의 없는 인생 대화, ‘세 귀로 듣는다’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링컨 정치의 노회한 면모를 상쇄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링컨 전문가다. “영화는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그는 링컨 신화를 영리하게 활용해왔다. ‘링컨’은 박근혜 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 전략은 허술하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치열하지 않다. 참모 역량도 부족하다. ‘링컨’은 우리 정치에 메시지를 던진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