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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칼럼] 한미연합사의 얄궂은 운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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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30면

불온한 상상을 해 본다. 2015년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서해 5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금 황해남도 고암포에 있는 북한 특수부대는 소청도를 노리지 않을까. 이 섬은 주민이 200여 명밖에 없는 취약지다. 한 예비역 제독은 “주민이 인질이 되면 군사작전은 끝이다. 서해 북부를 북한이 장악하면 수도권 서부의 안보는 극히 취약해진다”며 “지금은 한미연합사의 억지력이 이런 사태를 막고 있다”고 말한다. 정전협정 제2조 13-2항에 따르면 서해 5도는 유엔사의 관할이며 1978년 이후 이에 필요한 전투력은 한미연합사가 지원한다. 그래서 한미연합사 사령관의 일일 체크 목록엔 꼬박꼬박 서해 5도 상황이 들어간다. 연합사가 없다면 한국의 10배 가까운 북한의 서부 전력에 노출될 서해 5도는 심각하게 불안해질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 최근 상황 때문이다. 3차 핵실험을 한 북한이 4차를 벼르고 미국은 북한 비핵화보다 비확산으로 기우는 눈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140개 국정과제의 하나로 강력한 안보 버팀목인 연합사 해체를 확정했다. 표현은 ‘신(新)연합방위체제 구축’이지만 골자는 연합사 해체다. 그래도 될까.

 한미연합사 구상은 76년 8월 18일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사흘 뒤 한·미 합동작전을 하면서 시작됐다. 2년 만인 78년 11월 7일 창설됐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얘기다. 미 육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은 건 한국군보다 강한 미군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 시 이기기 위한 결정이었다. 또 전쟁의 원칙 중 하나인 ‘지휘 통일의 원칙’도 감안했다. 두 나라 이상의 군대가 함께 전쟁하면 단일 지휘권 아래 싸워야 한다는 게 나폴레옹 전쟁 이후 200년간 내려온 전쟁의 원칙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탈리아와 각각 싸우던 영국·프랑스는 미국 참전 뒤 영국사령관 아래 지휘부로 통일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연합사령부가 있었다. 6·25 때 16개 참전국은 파병 조건으로 단일 사령부를 요구했다. 중공과 북한도 처음엔 따로 싸웠지만 나중에 연합사를 만들었다. 연합사는 전력 승수를 8배 증폭시킨다고 한다. 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 등 28개국도 한미연합사와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부에 전시작전권을 위임한다. 사령관은 미 육군 대장이다. 통수권이나 군 지휘권이 아닌 전시작전권 위임은 주권과도 관계없고 승리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연합사 없는 다국 작전은 패배하기 십상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독일·이탈리아·터키·일본은 따로 싸웠고 결과는 역사가 말해 준다. 월남전 당시 미국·베트남·한국도 따로 싸웠다. 필요한 협력은 연합전투 참모단을 통해 이뤄졌다. 한 예비역 3성 장군은 “한국이 전작권 환수, 연합사 해체 뒤 만들 체계가 바로 이 전투 참모단이며 구체적으론 32개 협조단”이라고 말한다.

 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반도 방위체계는 연합방위에서 공동방위로 바뀐다. 글자만 바뀌는 게 아니라 본질이 달라진다. 전시에 양국은 당연히 협조하지만 작전은 따로 한다. 연합사의 장점인 자동 협동과 신속성이 상실된다. 공동방위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작전 지휘도 한국군은 평택, 미군은 서울에서 각각 하게 된다. 전시 때만이라도 단일 지휘가 되면 이길 수 있는데 각각 따로 힘들게 싸우는 것이다. 승리를 보장 못할뿐더러 중립적으로 말해도 안보의 모호성은 늘어난다.

 그런 차원에서 왜 서둘러 연합사 해체를 국정과제로 확정하는지 걱정되는 것이다. 한·미 사이의 오랜 합의와 국민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전작권 환수가 연합사 해체로 이어지지 않게 지혜를 짜내는 게 순서 아닌가. 아버지가 연합사로 굳힌 안보의 틀을 그의 딸이 최종 해체하면서 안보는 더 굳히겠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마침 새로 내정된 남재준 국정원장과 논란 많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연합사 해체 반대파’로 분류되니 언제든 이를 격렬히 논의하길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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