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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작가, 빠진 손톱에 골무 끼고…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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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생
최인호 글, 조금희 그림
여백, 288쪽, 1만4000원

‘그동안 나는 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작가 최인호(68)가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낸 책의 첫 문장이다. 침샘암 진단을 받은 2008년 5월 이후 그의 삶은 작가보다는 환자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책은 가톨릭 ‘서울주보’에 연재했던 글을 비롯, 첫 수술 이후부터 쓴 글을 모았다.

 그는 투병의 순간과 기억을 고통의 축제이자 고통의 피정(避靜) 기간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그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번민과 고뇌의 시간이 함께 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금언을 인용하며 “내 차례가 돼 암에 걸렸다”고 말할 정도지만, 암 진단을 받았던 당시에는 죄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여겼다. 하지만 죄인이라 아픈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을 읊으며 말한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라고.

 이제 그는 낫게 해달라고 신에게 떼쓰지 않는다. 자신을 목판 위에 놓인 엿가락이라 칭하며, 가위로 자르든 엿치기를 하듯 엿장수 맘대로 하시라고 대범하게 기도한다.

 삶과 죽음에는 초연해졌지만 그를 괴롭게 한 건 글을 쓸 수 없는 허기였다. “나는 내가 작가가 아니라 환자라는 것이 제일 슬펐다. 나는 작가로 죽고 싶지, 환자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서울고 2학년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반세기여 작가로 살아온 그에게 글은 인생의 동의어였을 터다. 그러니 글을 놓는 것은 숨 쉬지 않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 목마름을 견디지 못한 그는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고무 골무를 끼고, 빠진 발톱에 테이프를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조각을 씹으며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완성했다.

 그와 따뜻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고(故) 이태석 신부의 옆 병실을 쓰다 선종한 사실을 알고 느꼈던 슬픔, 그의 투병 기간 중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육체적 고통의 극한을 경험하고, 그 끝자락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경험한 작가의 눈은 한결 더 따뜻해지고 깊어졌다. 삶에 대한 마음가짐은 더하다.

 “생(生)은 신이 내린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라는 그의 말이 스며들듯 다가오는 이유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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