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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세돌 “진흙탕 싸움은 싫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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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9보(89~100)=두터움과 무거움의 차이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엷음과 가벼움의 차이는 더 어렵죠. 두터움은 좋은 것이고 엷음은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승부를 하다 보면 엷음을 각오하고 현금(실리)부터 챙기는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집니다.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 판의 천야오예 9단처럼 두터움을 유지하려 애쓰다 실리에서 뒤처져 ‘집부족증’에 걸리는 케이스가 바로 그것이죠.

 90으로 ‘참고도1’처럼 계속 실리를 밝히는 건 위험합니다. 6으로 중앙을 봉쇄당하고 8로 우변 대마가 공격당하면 편안하던 백의 항로가 폭풍우로 뒤덮이게 됩니다. 92로 요소를 장악해 백의 우세는 확고합니다.

 93과 94의 응접은 권투로 치면 ‘잽’의 교환이지요. 흑은 이 한 점을 이용해 파장을 확대하고 싶겠지요. 백은 전면전은 싫고 그냥 죽이기도 아까워 살짝 동태를 보고 있습니다. 백 돌이 두 점으로 커졌기에 먹음직스러운 물건이 됐습니다. 흑이 95, 97로 밀어붙이는 이유지요. 99는 아주 사납군요. 곱상한 천야오예가 맹수처럼 포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늦은 걸까요. 이세돌 9단, 잠시 생각하더니 100으로 두말없이 꼬리를 내립니다. 보기 드문 광경이네요. 평소의 이세돌이라면 ‘참고도2’ 백1로 끊는 수를 거의 눈감고 둘 것 같습니다만 흑2의 전투가 골치 아파 지금은 두텁게 지켰습니다. 이세돌 9단도 지금은 진흙탕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군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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