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학사는 교감 승진 ‘패스트 트랙’ … 5년은 단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1호 12면

충남교육청 승융배 부교육감이 21일 내포신청사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사회적 물의를 빚어 온 장학사 시험 비리 사건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예산=뉴시스]

# 장면1. “교육청 장학사가 장학사 시험에 합격시켜주겠다고 해서 2000만원을 줬다. 나만 준 게 아니다. 다른 사람도 1000만원을 주고 장학사 시험에 합격했다.” (2010년 1월 서울교육청 장학사의 진술)

교육감 음독으로 이어진 충남교육청 사태 … 장학사가 뭐길래

#장면2. “2000만원을 주면 장학사 시험 문제를 알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돈을 주고 논술 6문항, 면접 3문항을 받았는데 시험에 그대로 나왔다. 문제를 받은 한 교사는 다른 교사에게 다시 돈을 받고 문제를 팔았다.”(2013년 2월, 충남)

시간과 위치만 바뀌었다. 다른 것은 ‘제목’뿐이다. 장학사 시험 비리가 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서울교육청 사건은 뇌물을 준 여교사(나중에 장학사가 됨)가 뇌물을 받은 교육청 장학사와 술자리를 갖던 중 하이힐을 휘두른 사건이 알려지면서 표면화됐다. 그래서 지금 ‘서울교육청 하이힐 폭행’ 사건으로 불린다. 수십 대의 대포폰이 쓰이고, 수사 받던 교육감이 음독까지 한 충남 사건은 어떤 조롱 섞인 제목이 달릴지 궁금하다. 존경받아야 할 교육계에서 이처럼 추악한 비리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교육계는 지역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교육감의 막강한 권한에서 원인을 찾는다. 교육감 직선제를 아예 폐지하거나, 적어도 현재와는 확 다른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비리의 현장이 왜 하필 장학사 선발 시험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교장·교감 승진에 대한 교사들의 열망에 비해 승진 기회가 턱없이 좁은 상황에서, 승진 가능성을 높이려고 장학사·연구사 등 ‘교육 전문직’ 시험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있다.
 
충남만 작년부터 강화된 새 시험제도 외면
충남교육청은 21일 ‘교육전문직 선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가 됐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 보안업체를 고용해 문제 출제·채점 기간에 24시간 보안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출제 문항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 문제를 내는 사람과 선정하는 사람을 나누고 ▶ 출제 위원의 50% 이상을 외부 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신뢰도를 높이기로 했다.

장학사 시험문제 유출과 관련해 경찰의 조사를 받아오던 김종성 충남도교육감이 19일 음독을 시도한 뒤 대전 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옮겨지고 있다. [대전=뉴시스]

계획대로라면 충남교육청의 교육전문직 선발 시험의 신뢰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다른 지역은 이미 모두 도입해 시행 중인 제도를 충남교육청은 사건이 터진 뒤에야 뒤늦게 도입했다는 점이다.

서울교육청은 2010년 장학사 선발 비리 사건 이후 수능 등 국가시험에 준하는 엄격한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한 장학사의 말을 들어보자.

“위원 선정 사실 자체를 합숙 소집 전날 밤이나 당일 새벽에 연락합니다. 합숙소에 도착하면 휴대전화 제출 뒤에 금속탐지기와 보안검색을 또 합니다. 대포폰이나 USB 등 일체의 물건을 숨길 수 없죠. 출제와 채점이 모두 끝날 때까지 24시간 외부 보안용역업체가 감시를 합니다. 문제도 출제 뒤에 서로 다른 교과 영역의 위원들이 교차로 검증합니다. 편향되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죠.”

이처럼 강화된 시험 제도는 2011년 말에 교육과학기술부가 기준안을 만든 뒤, 지난해 초 각 시·도 교육청에 시달해 시행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교육청이 규정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유독 충남교육청은 지난해 시험에서 이를 지키지 않았다. 무지 때문인지, 아니면 돈거래를 위해 고의로 지침을 외면했는지 수사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교육전문직 시험에서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교감·교장 승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교육전문직을 거치지 않고 일반 교사로만 있다가 교장·교감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운’이 필요하다.

“학생 잘 가르치고, 행정업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기회가 오는 게 아니에요. 운이 따라야 하죠. 저는 빠른 편인지도 몰라요.”

서울의 한 공립고교에서 교무부장으로 일하는 A씨(46)의 말이다. 휴직을 뺀 교직 경력 20년이 되는 A씨는 교감 자격 연수에 필요한 ‘점수’를 거의 채웠다. 2년 내지 3년 후에는 연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교감 연수를 받는다고 바로 교감이 되는 건 아니다. 인사 적체가 워낙 심해 연수 성적 1등이라도 하지 않으면 2~3년은 더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 경력·연구 점수·근무 평정 등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을 받은 A씨에게도 교감의 자리는 ‘아직 먼 얘기’다.

교장 대다수, 장학사·연구사 경력 갖춰
일선 초·중·고교 등 현장에서만 일해 온 교사들이 교감과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경력 20년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저 요건일 뿐이다. 여기에 시범학교 근무나 연구 대회 수상 등에서 얻는 점수, 보직교사 경력, 대학원 등 개인 경력도 꾸준히 관리해 점수를 모아야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은 “다른 점수를 최고 한도까지 채운 교사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교장과 교감이 매기는 근무평정 점수까지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감 승진을 좌우할 최종 권한이 교장에게 있기 때문에 교사들은 업무는 물론 교장과의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사들이 ‘운’을 얘기하는 이유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25년을 훌쩍 넘는 게 보통이다. 인사 적체가 심한 서울교육청의 교감 자격 연수에는 50대 중·후반 교사가 수두룩하다. 장학사·교육연구사 등 ‘교육 전문직’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교육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교직 경력 12~15년이면 시험 볼 자격이 생긴다. 일단 교육전문직이 되면 5년 정도 장학사·연구사로 일한 뒤 교감 승진 대상자가 된다. 최근에는 기간이 늦어져 7년까지 걸린다지만 일반 교사보다는 훨씬 빠르다. 교장 승진에도 유리하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교감이 되고, 인사정보나 인적관계도 유리해서다. 경기대 교직학과 김대유 겸임교수는 “전체 교장의 대다수가 전문직 출신인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근본적으로 인사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교사와 전문직의 승진 기간 격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며 “교육전문직이 평균 5년 정도 교감 승진에 유리한데, 자격 요건 등을 강화해 격차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지역 차원이 아니라 중앙의 ‘교육인사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전체적인 인사를 공정하게 진행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처럼 교육계 역시 관련 비리를 전담하는 기관이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교육전문직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전문직 과열의 원인이 결국 교장 승진에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중앙대 교육학과 이성호 교수는 “현장 지원보다 승진의 통로처럼 악용되고 있는 현행 교육 전문직 제도는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하병수 대변인은 “현재의 승진 점수 관리 체제, 장학사를 거치는 교장 승진 체제가 비리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교장 보직제도나 공모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대 김대유 겸임교수는 “대학 교수가 보직이 끝나면 다시 학생을 가르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교감·교장도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