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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계산 다시” … 노동계 줄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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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울산의 자동차부품 업체에서 일하는 이모(45)씨는 다음 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계획이다. 지난 3년간 제대로 받지 못한 휴일·연장근로수당 2453만원을 소급해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이씨는 “회사가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복리후생비를 제외하고 수당을 계산하면서 시간당 3000원 이상을 손해 봤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박윤희(34)씨는 아이를 낳고 현재 휴직 중이다. 연봉이 4500만원(월 375만원)인 박씨는 육아휴직급여(통상임금의 40%, 월 100만원 한도)로 한 달에 100만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70만원을 받고 있다. 박씨는 “회사가 지난해부터 기본급의 절반을 역량(力量)급으로 바꾸면서 휴직급여의 기준인 통상임금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란이 커지고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돈을 말한다. 각종 수당과 출산휴가·육아휴직급여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법에는 기본급 외에 어떤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통상임금 산정지침)이 판단 근거가 돼 왔다. 지침에 따르면 근로 시간과 관계없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복리후생비·근속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에 따라 휴일근로수당(통상임금의 50% 이상) 등을 지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대법원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휴일근로수당 등의 차액을 소급 지급해 달라는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참여 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집단소송만 12건이 진행 중이며 기아차 노조 소송의 경우 참여 근로자가 2만7000여 명에 이른다. 현대차 노조도 22일 통상임금 대표소송을 낼 예정이다. 기업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 왔는데 이제 와서 통상임금 산정이 잘못됐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입장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둘러 통상임금의 구체적인 범위를 법에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들의 부담이 큰 만큼 지금까지의 통상임금은 소급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 체계는 기본급을 적게 주고 이를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수당으로 메우는 형식”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은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주무 부서인 고용부는 기존 지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태희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관은 “상여금 같은 명칭이 아니라 실제 지급하는 양태를 기준으로 통상임금을 산정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정부 지침을 너무 기계적으로 해석한 게 문제”라 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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