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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순위 매겨봤더니…강남, 최고 아니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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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강남 아이들이 1등을 해요. 어려서부터 바짝 기초를 다져뒀기 때문인지 타 지역으로 전학 가도 상위권에 랭킹되는 아이들은 대치동 아이들이죠. 다들 ‘강남 강남’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성적의 기복도 적은 편이죠. 웬만한 강남 지역의 공립초등학교도 소위 명문 사립학교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걸요. 강북이나 지방 학교들 하고는 비교할 수 없죠. 강북에서 1등 하던 애도 강남 오면 바닥을 깔아준다잖아요.” (대곡초 2학년 학부모 이모씨·45세) 이런 강남 학부모의 믿음은 사실일까.

메트로G 팀=안혜리·이원진·전민희 기자

“우리 애 다니는 학교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어느 정도일 것 같냐고요.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전국 최상위권 아닐까요. 엄마들이 다들 열심히 시켜서인지, 대치동 학교에는 중위권이 없어요. 사교육과 엄마들 서포트를 제대로 받는 상위권과 강남 내 판자촌에 살거나 스스로 의욕이 없어 하위권이 된 딱 두 부류겠죠.” (이지현·42·대치동)

 "어떨 땐 가르칠 게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애들이 미리 다 배워오니까요. 부모가 열의를 갖고 사교육도 시키고 하기 때문에 학생 수준은 분명 다른 지역에 비해 높습니다.” (강남구 D초등학교 교사 김모씨)

 강남불패(江南不敗) 신화의 한복판인 강남 3구(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서 만난 엄마들은 물론 교사들 모두 “강남 초등학교가 다른 지역에 비해 학업성적이 뛰어나다”고 믿고 있었다.

 서울대 합격생 수 등 명문대 입시 결과만 들여다보면 맞는 말이다. 서울대(대학생활문화원)가 2012학년도 입학생 2148명의 출신지를 분석한 결과 강남 3구 출신은 전체 합격생의 17.7%인 380명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강남 3구 출신이란 얘기다. 강남 3구의 인구수는 167만2356명(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5000만 명 기준)의 약 3.34%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울대엔 이 비율보다 훨씬 많은 강남 출신 학생이 들어갔다. 좀 더 세분화하면 강남구가 224명(10.4%)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와 송파구가 각각 96명(4.5%), 60명(2.8%)이었다. 서울대는 전국에서 학생을 고루 뽑기 위해 지역균형 선발 등 각종 제도를 도입했지만 강남 3구 출신 신입생 비중은 2010년 13.5%, 2011년 13.9%로 매년 느는 추세다.

 그러나 이 결과를 놓고 강남 지역 학교들이 매년 학생들을 점점 잘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사교육이 갈수록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서울대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2년의 경우 월평균 가계소득이 5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 가구에 속한 신입생이 47.1%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강남 지역 일반계 고교 사교육비(월 56만8000원)는 읍·면 지역의 5배에 달했다.

 그렇다면 중·고교에 비해 사교육 효과가 비교적 덜한 강남 초등학교의 전반적인 수준은 어떨까. 서울대 입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전국적으로 가장 뛰어난 학업성취도를 보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노(No)”다.

 본지가 교육업체 ‘하늘교육’과 함께 강남 3구 초등학교 89곳(사립학교 제외)의 2012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분석한 결과 전국 500위 안에 드는 학교평가는 왕북초·대도초(이상 강남구)·원명초·반포초(서초구)·오륜초·세륜초(송파구) 6곳뿐이었다. 대치동 안에서도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대치초조차 500위권 밖이었다. 이 순위는 각 학교 6학년생이 치른 학업성취도 평가(국어·영어·수학 세 과목 평균)에서 ‘보통 이상’ 학력을 올린 학생수 비율로 따졌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보통 학력 이상 ▶기초 학력 ▶기초학력 미달로 나뉜다. 전국 순위는 전국 6304곳의 초교 가운데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시한 5639곳을 대상으로 했다.

 최미숙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상임대표는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중을 보면 각 학교가 얼마나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수의 비중은 공교육 효과보다는 선행학습 등 사교육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며 “그러나 기초학력에 미달할 정도로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 비중은 학교의 학업 시스템이나 교사의 노력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교육 효과가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초학력 미달 비중이 높은 학교일수록 학교가 학생을 그만큼 열심히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강남 3구 내에선 서초구가 ‘보통 이상’ 학력 비율이 92.7%로 가장 높았다. 거꾸로 말하면 서초구 학생 가운데 7.3%는 기초학력이거나 그 미달이란 것이다. 그 뒤는 강남구(92.5%)·송파구(88%) 순이었다. 서울 평균은 84.9%로, 근소하게 전국 평균(85%)을 밑돌았다.

공교육은 시들 사교육만 열기

 대치동에 있는 초등학교 가운데 1위는 대도초(97.4%)였다. 그러나 대치 1위라는 랭킹이 무색하게 전국에선 463위, 서울 학교 가운데 22위에 그쳤다. 이는 광진구 양진초(22위)와 같은 순위다.

 강남 3구에서 아무도 뒤처진 학생 없이 전교생이 보통학력 이상을 기록한 학교는 공립 중엔 없었다. 강남 유일의 사립학교인 계성초만 보통 이상 학력 비중이 100%였다. 이 같은 결과를 들려주자 대치초등학교 학부모 이모(39)씨는 “계성초야 워낙 있는 집 자식들만 가는 값비싼 명문 사립학교 아니냐”며 “사립이랑 공립을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다. 공립학교보다 우수한 사립학교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공립학교 가운데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린 곳이 많기 때문이다. 계성초 외에 전국으로 300여 개의 공립학교가 전교생이 모두 보통 이상 학력을 기록했다. 서울 등 대도시보다는 충남·충북이나 경남·경북의 소규모 학교가 많았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중·고교의 경우 국제중이나 특목고 등 일부 학교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학교별 학업수준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초등학교는 이론적으로는 학생 수준이 균질한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교육열, 경제수준 등을 감안했을 때 압구정동이나 청담동·대치동 등 강남 핵심 지역 학생이라면 계성초와 다를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그런 환경에서 이 같은 격차를 보였다면 강남 공립학교들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순위가 아니라 서울 지역 상위 50개 학교를 꼽은 결과도 그리 좋지 않았다. 강남3구 학교는 18개교에 불과했다. 강남구 8곳, 송파구 6곳, 서초구 4곳 순이었다. 전국 평균(85%)에 못 미치는 학교는 21곳이나 됐다. 개포초·대청초·영희초·신구초·수서초(이상 강남구)·언남초·방현초·이수초(서초구)·문덕초·장지초·방이초·송파초·거여초·잠전초·가락초·삼전초·석촌초·풍납초·영풍초·마천초·남천초(송파구)다.

 강남 3구 중에선 강남구 수서동의 왕북초와 송파구 방이동 오륜초가 공동 1위였다. 왕북초 송춘례 교장은 “대치동을 눌렀다니 기분이 좋다”며 “학교 주변이 다 아파트 단지로 학부모 수준이 높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오륜초 교장도 “방과 후 학습 등을 통해 꾸준히 학생들의 학력 체크를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두 학교 모두 공교육이 힘을 발휘한 셈이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면 이처럼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데도 국내 교육현장, 특히 강남은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다. 공교육 기능은 마비되고 사교육 열기만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장관을 지낸 한 교수는 “손자가 대청중이 대치동 근방에서 가장 명문이라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학교는 수업시간에 자면 선생님이 분필을 던져 깨우고 벌 세우고 하는데, 대청중은 그냥 내버려둬서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기 좋다’고 답하더라”며 “기가 찼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이 극성인 지역일수록 오히려 학교 수업은 더 부실하겠구나 싶어 씁쓸했다”고 덧붙였다.

사교육도 들인 돈만큼의 효과는 미지수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고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 [중앙포토]

 강남구청 강영순 정보화팀장은 “대치동과 압구정동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가구별로 매달 각각 125만원과 178만원에 달한다”며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결국 강남의 사교육비 투입에 비해 실제 거둬들이는 효과는 상당히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김윤주(41·대치동)씨도 “굉장히 실망스러운 성적”이라며 “선생님들이 학업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을 ‘학교 평균을 깎아먹는다’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각별히 신경을 써서 성적을 끌어올려야 하지 않느냐”며 “교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립학교에서만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립학교도 공립학교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서울 시내 모든 사립학교가 계성초와 같은 뛰어난 성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게 그 방증이다. 서울엔 사립초등학교가 모두 40개가 있다. 위에 분석했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전국 500위 안에 든 학교는 이 중 15개에 불과했다. 계성초와 노원구 청원초 2곳만이 전교생 모두 보통 학력 이상이었다. 반면 보통 학력 이상 비중 56.4%로 사립 초교 중 가장 성적이 안 좋은 은평구 알로이시오초(전국 5537위)를 비롯 11개 학교는 전국 순위 1000위 밖이었다. 웬만한 서울의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성적이 나쁘다는 얘기다.

 강남 엄마들이 선호하는 영훈초와 숭의초는 각각 14위(전국 441위)와 21위(661위)였다. 숭의초 학부모 김모(44)씨는 “생각보다 순위가 낮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늘교육 송기헌 기획실장은 “수업시간수나 학교시설 등 여러 면에서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교육 여건이 더 좋다”며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이면 충분히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단 한 명도 내지 않을 수 있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1등을 한 왕북초의 송춘례 교장은 “학부모의 기대 수준에 맞춰 학력 낙오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도록 매일 예습·복습 시스템을 철저히 정착시켰다”며 “이 학교 졸업생이 가장 많이 가는 인근 대왕중학교의 성적도 함께 서울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교육 열풍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가 기본에 가장 충실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인천 송도고 오성삼 교장(전 건국대 교육학과 교수)은 “학업성취도의 본래 목적대로 교사도 전교생을 미달 제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열의를 가지고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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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취도

학업성취도 평가는 매년 한 차례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치른다. 초등학생은 국어·영어·수학, 중고생은 위 세 과목에 과학과 사회 두 과목을 더 본다. 성적은 성취도에 따라 ‘보통 이상 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등 3단계로 나눈다. ‘보통 이상 학력’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성취 목표의 50% 이상을 달성한 학력 수준. 성취도가 20~50%이면 ‘기초학력’, 20% 미만이면 ‘기초학력 미달’로 분류한다. ‘기초 학력 미달’인 학생은 진급을 해도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교육 당국은 판단한다. 교육과학부가 운영하는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학교별로 이 비중이 공개된다. 교과부는 학교의 서열화를 부추긴다며 전국 학교 순위는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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