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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코치없는 신입사원, 뇌 검사하니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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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주부 김현아(가명·43·서울 서초구)씨. 눈치가 없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선생님조차 자진 전학을 권고할 정도다. 예컨대 선생님이 “오늘 우리 반은 떠들었으니까 다 남아서 청소하고 가”라고 하면 혼자 손을 번쩍 들고 “저는 오늘 안 떠들었는데요”라고 하거나, 수학시간에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혼나면 “누구누구는 어제 영어시간에 국어 공부하고 있었는데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다. 어른이 “너 참 잘~한다”하고 눈치를 주면 정말 잘하는 줄로 알아듣는다. 또 친구들이 “바보야, 나가 죽어라”하고 장난치고 도망가면 이를 그대로 믿고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눈치코치 부족하면 우뇌에 이상

[일러스트=강일구]

‘공부 잘 하는 건 가르칠 수 있어도 눈치 없는 건 부모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타고난 성향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치 없는 게 일종의 뇌질환이며 치료 가능하다는 주장이 최근 의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른바 ‘비언어성 학습장애’라는 것. 신석호소아정신과 신석호 원장은 “언어성 학습장애가 언어적인 능력, 즉 읽고 말하고 쓰고 암기하는 등의 정보처리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비언어성 학습장애는 시각정보·공간정보·통합적·추상적 사고능력에 관계된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언어성과 관계된 기능은 주로 좌뇌에, 비언어성과 관계된 기능은 주로 우뇌에 있어 ‘우뇌기능학습장애’라고도 부른다”고 말했다.

 우뇌기능학습장애의 주요 증상은 눈치가 없다는 것이다.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머리 속에서 재정리해 처리하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때문에 상대방의 표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메티스신경정신과 진태원 원장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큰 특징인데, 남의 감정을 잘 못 읽을뿐더러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할지 예측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때문에 말을 툭툭 내 뱉어 눈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주위 친구들이 점점 없어지고 따돌림 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학교 성적 좋다고 넘어가선 안 돼

시공간 파악능력도 떨어진다. 퍼즐맞추기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는데도 흥미가 없다. 손가락 발가락 등의 소(小)근육 발달도 우뇌가 지배한다. 때문에 글씨도 잘 못쓰고 젓가락질에 서툴다는 특징이 있다. 운동화 끈도 혼자 잘 묶지 못한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이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신석호 원장은 “신입사원에게는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주어지게 마련인데, 우뇌기능이 떨어지면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 할 지 감을 못 잡는다. 일의 순서를 정해 재배치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붙잡고 있어 상사에게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진태원 원장은 “똑같이 일을 배워도 우뇌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일을 늦게 배우고, 어리버리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뇌기능저하는 부모가 잘 모르고 넘어간다. 밸런스브레인 변기원 원장은 “우뇌기능이 떨어진 아이 중에서 좌뇌기능이 정상이거나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일반적인 학습 능력은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가 좀 이상하더라도 학습 능력에서는 별 문제가 없고 성적이 좋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게 변 원장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검사 받도록

우뇌기능이 떨어졌나 확인해 보려면 전문 지능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웩슬러 아동용 지능검사(K-WISC-Ⅲ)로 전체 평균지능·언어성지능(좌뇌기능)·동작성지능(우뇌기능)을 평가한다. 신석호 원장은 “동작성 지능점수가 언어성 지능점수보다 20점 이상 낮으면 우뇌기능 저하로 본다”고 말했다. 진 태원 원장은 “현재 전체 아동 중 2% 정도에서 우뇌기능 학습장애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뇌 기능저하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므로 이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진단이 됐다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진태원 원장은 “우뇌세포를 자극하는 각종 치료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새 뇌회로가 형성되고, 안정화된다. 단 ADHD가 동반된 아이는 전두엽 기능에 문제가 있으므로 약물 치료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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