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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명절 훼방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0호 18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모임과 명절은 설레면서도 겁이 나는 자리다. 특히 명절은 쌓이는 스트레스로 면역 기능이 저하돼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핵가족화되고, 부모 자식이라는 가족의 기본 단위조차 흔들려 더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집안 행사에는 예로부터 말이 많았다. 우선, 사람들을 살살 긁어 기분 나쁘게 하는 이들이 꼭 있다. 왜 그렇게 살이 쪘니, 취직은 왜 안 하니, 하는 식으로 예민한 문제를 건드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든다. 갈등 유도형도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인격모독을 한다. 결국 화라도 내야 자존심이 유지될 정도로 상대방을 코너에 모는 이들이다. “멍청한 인간, 그 따위로 살아서 뭐 할래”라는 식의 폭력적 언사를 뱉는 이들이다. 셋째는 폭발형이다. 대개 첫째와 둘째 유형의 유도에 넘어가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봉합형도 있다. 과거에는 권위적인 아버지나, 따뜻한 어머니의 중재가 먹혔지만 요즘엔 119 구급대나 경찰이 출동해야 멈추기도 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어떤 집단이건, 모이면 역동이 생긴다. 싸움 붙이고 화를 내서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 열등감과 소외감을 분란으로 해소하려는 사람들. 유치원생처럼 자기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 세상 사람들은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 성공한 이는 재수 좋고 배경 좋은 것이고 나는 다만 운이 나쁠 뿐이라고 믿는 신세한탄자들. 조금이라도 내가 손해 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소아병적 인간도 있다. 예전에는 겉으로라도 착한 척을 했는데 요즘엔 아예 대놓고 손익계산서를 보이며 막 나가는 이들도 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남을 의식해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고집하는 군상들도 있다. 어쨌거나 시끄럽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를 꺾었다고 좋아하는, 어처구니없는 이들도 있다.

피로 얽힌 가족은 내 자유의지로 시작한 것이 아닌 만큼, 내 기분대로 쉽게 끝낼 수도 없다. 요즘엔 장례식이나 해야 내 부모형제 만나겠다는 사람도 있고, 더 나아가 조만간 외국처럼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는 가족도 늘어날 것이다. 자주 만나건, 만나지 않건 간에 가족과 나누었던 많은 기억들과,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던 경험들은 의식과 무의식에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민얼굴로 만나는 사이라, 자신의 콤플렉스와 본능적 측면이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되어 다른 관계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자신만 힘들고, 자신만 손해 본 것처럼 생각하고 남만 바꾸라고 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기만 할 것이다. 내 안의 지저분한 쓰레기도 버리지 못하면서 남의 탓만 하며 남들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아예 보지 않는 게 해법인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나의 허물을 감추듯, 남의 허물은 덮어 주고 잊어버리는 것도 내 정신건강에 좋을 수 있다.

주변에 너그러우면, 주변 사람들이 내 실수도 그냥 넘겨준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친지들을 먼저 존중하면, 그것을 보고 자란 내 자녀들도 약자를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 나만은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고 고집한다면, 담 쌓고 혼자 사는 방법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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