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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장면을 실제라 우긴 '정글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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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은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아마존·북극 등을 돌아다녔던 SBS 인기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제작진이 백기를 들었다. 프로그램의 사실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정글의 법칙’에 참여한 이지원·정준기·유윤재 PD는 13일 방송 홈페이지에 “일부 과장된 표현이 있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 좀 더 흥미롭게 편집하고자 한 제작진의 과욕에서 비롯됐다”며 사과의 글을 각각 올렸다.

 세 편의 글을 합하면 A4용지로 10장에 달한다. 그간 제기된 조작설에 대해 “정글의 법칙’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촬영 중에 벌어지는 것은 모두 사실”이라며 반박하던 것에서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정글의 법칙’이 연출·조작 구설수에 처음 오른 건 9일 전이었다. 지난 5일 배우 박보영의 소속사 김상유 사장이 ‘개뻥 프로그램’이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그는 당시 뉴질랜드 편을 찍고 있는 박보영과 함께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었다. 이후 김 사장은 “술 취해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제작진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내용의 공식입장을 두 차례나 냈다.

 그런데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집요하게 찾아냈다. ‘정글의 법칙’팀이 체험한 오지가 실제론 ‘관광코스’였다는 의혹이 가장 많았다. 돈만 내면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방송 화면 캡처 사진과 실제 관광상품으로 소개된 현지 사진을 비교하며 제작진을 압박했다. 그 중엔 원시부족이 마트에서 쇼핑하고 있는 사진도 있다.

 사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일정 부분 연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통상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제작진이 ‘진짜’임을 강조하는 무리수를 두곤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간 SBS ‘짝’, Mnet ‘슈퍼스타K’, KBS ‘1박2일’ 등에서 왜곡 편집, 대본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관행에서 비롯된 영향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사 측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억지 춘향’식의 사과가 달갑지 않은 까닭이다. 제작진은 이날 “오지에서 많은 출연자·스태프가 수십 일 동안 견뎌야 하는 조건에서 ‘통제 가능한’ 리얼리티로 방송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간 방송에선 자주 나왔던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밀림’ ‘외부인을 처음 만난 원시부족’이라는 자막이 무색해진다. 차라리 처음부터 현장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다큐멘터리인 척 말해놓고, 더는 숨을 곳이 없자 예능이라고 항변하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은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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