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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 노인 새벽녘 망치로 쿵쿵" 올라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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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살인·방화 등 극단적 상황까지 부르는 층간소음 문제도 이웃 간 대화와 배려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은 많다.

 서울 신정동의 건축한 지 10년 넘은 아파트 16층에 거주하는 이모(48)씨는 2011년 12월부터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위층에 사는 할아버지가 새벽녘에 망치를 들고 여기저기 쿵쿵 치고 돌아다닌다”며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 센터’에 불만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웃사이센터가 현장에 나가 조사한 결과 할아버지 역시 같은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범인은 기압이 차오르면 쿵쿵대는 소리를 내는 보일러였다. 결국 두 가족은 나란히 보일러를 수리하고 사이좋은 이웃이 됐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웃사이센터에는 지난해 말까지 7021건(하루 평균 35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가장 많은 소음 원인은 아이들의 발소리(73%)였다. 이 중 대부분은 전화 상담으로 바로 해결했지만 1829건(26.1%)은 현장진단과 소음도 측정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분류됐다.

 층간소음 분쟁이 소송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배상을 받더라도 액수가 크지 않은 데다 소음 발생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분쟁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사례도 없다.

2009년 부산에서 벌어진 이웃 간 층간소음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피고가 고의적으로 바닥을 내리찍는 소음을 일으켜 원고에게 정신적 피해를 가한 점이 인정된다”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고의성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부동산 전문 윤홍배 변호사는 “생활소음 분쟁은 소송이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제3자를 통한 해결보다는 당사자나 공동주택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중앙포토]

◆국토부 뒤늦게 대책 마련=그동안 뒷짐을 지고 있던 정부는 뒤늦게 해법을 내놓겠다며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국토해양부는 13일 오후 기존의 ‘공동주택 표준 관리규약 준칙’에 층간소음 예방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해 각 시·도의 관리규약 준칙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준칙에는 아파트 층간소음의 종류와 시간대에 따른 금지행위, 소음 발생 때 단계별 대응원칙 등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또 층간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둥식 구조의 아파트 건설을 권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아파트의 85%는 진동이 벽 전체로 전해져 층간소음이 큰 벽식 구조 아파트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으로 내놓은 대책이란 것도 결국 ‘권장’ 수준인 데다 처벌규정도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이날 국토부는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전부 개정을 다시 소개했다. 현재 기준은 아파트 시공 때 바닥 슬래브 두께 기준 210㎜(벽식 기준), 또는 바닥충격음 기준 최대 58dB을 만족하면 되지만 앞으로는 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최준호.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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