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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깡통 로봇이 아이폰 독점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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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09년 11월 30일 우리나라 2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KT가 아이폰을 출시했다. 20만 대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순식간에 100만 대 가까이 팔리는 ‘애플 쇼크’가 닥쳤다. 1위 사업자 SK텔레콤은 몸이 달았다. ‘전통의 파트너’ 삼성전자가 ‘물건’을 내놓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나온 게 ‘전지전능 옴니아’. 운영체제(OS)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모바일이다. 그렇지만 태블릿용으로 개발된 윈도모바일을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툭하면 시스템이 다운되고, 휴대전화 본연의 기능인 통화마저 어려운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아이폰’이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심었다.

 2010년 1월 18일. 구글이 개발한 OS인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첫 스마트폰 모토로이가 국내에 상륙했다. 모토로라의 작품이다. 초기 안드로이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업체들은 애니콜과 초콜릿폰 신화에 취해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현 구글 수석 부사장)은 2004년 삼성을 방문해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드로이드가 국내에 들어온 지 3년. 스마트폰 OS 시장에서 안드로이드는 대세가 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스마트폰 3대 가운데 2대가 안드로이드폰이다. 삼성은 안드로이드의 우등생으로 올라섰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드웨어 성능 향상이 혁신”=판을 뒤집은 계기는 갤럭시S다. 삼성전자가 사활을 걸고 만들었다. 부품 제조사로서의 장점을 최대로 살렸다.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성능의 부품을 한데 모았다. 소위 ‘스펙’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삼성전자를 위시해 안드로이드 진영은 하드웨어 성능을 올리는 것을 가장 큰 ‘혁신’으로 삼았다. 갤럭시 시리즈는 세대를 바꿔나갈 때마다 메모리를 늘리고 작동 속도를 높였으며 화면을 키웠다. LG전자·팬택 등 전통적인 강호들이 가세했다.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을 앞세운 아이폰의 ‘감성 품질’을 ‘더 좋은 성능(스펙)’으로 대응해 나간 것이다. 이 같은 물량 공세에 네티즌들은 “스펙이 감성”이라고 감탄했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은 급격히 성장한다. 2011년 5월 1억 대에 도달한 안드로이드폰은 이후 6개월 만에 2억 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9월엔 5억 대를 찍었다. 최근에는 매일 130만 대씩 팔리고 있다.

 ◆개방형이 답이다=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개방형)다. 누구든지 소스를 받아 자유롭게 수정·배포·판매가 가능하다. 누구나 새로운 기기를 출시할 수 있고,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 수 있다. 좋은 단말기나 콘텐트를 만들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이용자 수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단말기·OS·콘텐트를 한 손에 틀어쥐고 매출의 30%가 넘는 이익을 거두는 애플 모델과는 달리 ‘파이를 키우는 전략’을 쓴 것이다.

 다양한 파트너의 참여는 제품을 다양하게 만든다. 현재 1000종류가 넘는 안드로이드폰이 출시됐다. 화면 크기부터 사용자 인터페이스(UI)까지 다양하다.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애플이 안 된다고 선언한 펜을 도입했고, 4인치가 넘는 제품을 내놨으며, 패블릿(스마트폰+태블릿) 시장을 개척했다.

 애플의 최고 강점인 앱 마켓도 안드로이드 진영의 물량 공세에 밀렸다. 지난해 10월 구글플레이에 등록된 앱은 70만 개를 넘어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250억 번을 넘어섰다. 애플의 아이폰에 맞서야 하는 통신사(SK텔레콤 등)는 물론이고 제조사(삼성전자 등)까지 앱 개수 늘리기에 나선 덕이다. SK플래닛 이호연 매니저는 “개발자들이 과거에는 애플용 앱을 먼저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안드로이드용을 먼저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리눅스는 안 되고, 안드로이드는 되고=개인용 컴퓨터(PC)의 OS인 리눅스 역시 개방형이다. 리눅스는 1991년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대학원생인 리누스 토발스가 개발했다. 그는 소스를 공개하며 제조사들에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앞에서 끌어주는 업체가 없어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정보기술(IT) 업계의 거인인 구글이 주도하고 있다. ‘생태계 전략’으로 시장 자체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며 돈을 쏟아부었다. 특허나 폐쇄적 서비스를 통해 지배력을 극대화하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르다. 안드로이드는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고, 다양한 제조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렇게 돈을 쏟아부어서 구글이 얻는 이익은 광고 수익 극대화다. 구글은 수입의 95% 이상을 온라인 광고를 통해 창출한다. 모바일 기반의 인터넷 시장은 구글에 새로운 수입원이다. 건국대 경제학과 권남훈 교수는 “모바일 생태계가 더 다양하고, 개방된 경쟁 구도로 변하면서 기업들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며 “새로운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안드로이드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을 주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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