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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장관들이 90도 숙였던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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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한 번쯤 궁금했을 수 있겠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장관들의 허리 각도 말이다. 찬탄을 끌어낼 유연함이 발휘되곤 했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부지불식간에 표출된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 인사성이 밝은 사람들이 출세하는 법이라서? 아니면 앞선 이들이 그랬으니 덩달아서?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광재 전 지사의 말이다. “장관이면 대통령의 동반자인데 굳이 저렇게까지 인사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알아봤다. 결국 옛날부터 전해진 포토라인이 문제였다.”

 포토라인이라면 사진 촬영을 감안해 대통령과 장관들이 서는 위치를 말한다. 그게 양측이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선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는 얘기다. 장관이 팔을 쭉 뻗고도 상체까지 굽혀야 닿았단다. 대통령은 꼿꼿하고 장관은 90도로 굽힌 장면은 그래서 나온 거였다. 심성이나 인사성의 문제가 아닌, 먼 거리에 대처하는 인체역학적 현상이었던 게다.

 그 거리, 논리적 근거가 있긴 했다. 대통령을 위해(危害)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떨어져야 한다는 경호상 이유였다.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이, 게다가 장관 된 사람이 무슨 위해냐고 해서 결국 줄였지만 말이다. 이 전 지사는 “이런 과정 자체가 권위주의 분위기를 만든다”고 회상했다.

 청와대 참모와 경호 간의 신경전은 현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5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당선인 보고 때 집무실 안에 경호원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고성능 마이크를 낀 채였다. 경호 규정이 그랬다고 한다.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참모뿐인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냐”고 해서 끝내 경호원을 밖으로 몰아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청와대 인사는 “다른 사람(경호실장 지칭)이 밖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걸 알면 누가 편하게 얘기하겠느냐. 이전 대통령들은 어떻게 견뎠나 했더니 YS 측은 3개월 지날 때까지 몰랐고 그 후에 손대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더라. 우린 그나마 인수위여서 손을 댔다”고 했다.

 그가 ‘손을 댔다’고 한 건 경호원을 집무실 밖에 있도록 한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경호실을 대통령실장의 지휘를 받는 차관급 기관(경호처)으로 낮춘 것까지 포함한다. 1970년대 말 경호실이 봉투를 내밀며 “이대로 외워서 대통령 앞에서 발언하라”고 해 진땀을 흘렸던 경험이 있는 이 대통령도 공감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그렇다고 경호의 위상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대통령이 어딜 가고 싶어해도 경호에서 난색을 표하면 일단 제동이 걸리곤 했다. 청와대 모 수석이 평소 타던 차를 수석이 된 뒤에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했다가 경호에서 “청와대에서 지급하는 차량만 타야 한다”고 반대해 며칠간 택시로 출퇴근하겠다고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이 경호처 업무가 아닌데도 경호처장에게 지시해 해결한 일도 있었다. 경호가 여전히 막강했던 거다.

 청와대 참모들은 그래서 “청와대 주인은 우리가 아닌 경호”라고 말하곤 한다. 여느 정상 국가처럼 경호가 대통령과 참모 바깥에서 말 그대로 경호만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참모 사이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사실 현 체제에서 청와대의 집단 기억은 경호를 통해서만 전승된다. 대통령도 참모도 그저 5년간 머물다 갈 뿐이다. 경호가 “관례다” “경호 규정이 그렇다”고 하면 관례로 경호 규정으로 남곤 했다. 그 사이, 그렇게 경호를 앞세우는 사이 대통령은 시민은 물론 참모로부터도 멀어져 권위주의적, 폐쇄적이 되곤 했다.

 YS 이래 대통령과 참모들은 그래도 문제점을 인식하긴 했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런가. 경호를 장관급 경호실로 격상했고 언론의 비판에도 육군참모총장 출신을 경호실장으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실장보다 앞서 발표토록 한 그다. 전조가 좋지 않다.

고 정 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