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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 재건축 나홀로 지지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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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요즘 사업 추진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선 그동안 “나를 따르라”고 외치던 ‘대장’이 안 보인다. 항상 뒤따르기만 하던 단지가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는데 정작 늘 시장을 주도해 온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오히려 잠잠하다.

 은마는 교통·입지여건이 뛰어난 강남 한복판의 대규모(4424가구) 재건축 단지라는 점에서 그동안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왔다. 시장에서는 ‘재건축 대장주’ ‘재건축의 상징’이라는 말로 통했다. 정부는 집값 불안의 진원지로 은마를 꼽기도 했다.

 그런 은마가 2010년 3월 안전진단 문턱을 넘은 뒤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재건축 추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선 단지 내의 폭 14m짜리 도로다. 서울시가 2006년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설계한 것인데, 주민들은 사업성이 악화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도로로 인해 사선제한 등 건축 규제에 걸려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며 “우선 이 도로를 없애야 정비계획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재건축 이후를 감안하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시가 기본계획을 바꿔야 하는 문제여서 쉽게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로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주민 간 의견 차도 큰 편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은마는 유독 심하다. 사업을 주도할 추진위원회조차 제대로 구성이 안 돼 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일부 주민에 의해 추진위원장이 직무정지되는 등 구심점이 없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중층 단지(14층)라는 특성도 재건축 추진에 악재다. 기존 용적률(180%)이 높은 편이어서 법정 상한선(300%)까지 용적률을 올려도 사업성이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시에 용적률을 400%까지 올릴 수 있는 종 상향(3종 일반→3종 준주거)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아파트 값은 속절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서울정보광장에 따르면 최근 76㎡형(이하 전용면적) 급매물이 6억9500만원, 6억9400만원 등에 계약됐다. 7억원 선이 깨진 것은 2006년 1월 아파트 실거래가를 조사한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6년 말에는 무려 11억3000만원에 매물이 나오기도 했었다. 대치동 우방공인 신용수 사장은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의 초급매물 일부가 7억원 이하에서 거래된 것”이라며 “이후 추격 매수세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지금은 매물이 귀하다”고 전했다. 이달 들어 매도 호가도 오름세를 보이며 주택형별로 2000만~3000만원가량 뛰긴 했다.

 그러나 은마는 당분간 대장 노릇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재건축사업을 본격화하려면 3~4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치동 B공인 관계자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경제 상황 등에 따라 몸값은 오르내리겠지만 사업에 시동을 걸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사업 추진 경과 등을 살피면서 투자 시점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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