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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한 교황, 바티칸 봉쇄수도원 머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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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실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퇴위에 대한 영상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강 의장은 “ 대한민국과 한국 천주교회를 위하여 기도와 격려를 보내준 데 교황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뉴시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갑작스런 사임 발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최고 수장이 바뀌는 로마 가톨릭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건강 말고 다른 배경은 없는 걸까.

 가톨릭대에서 교회법을 가르치는 서울대교구 이경상(53) 신부는 “교회법에 명시된 대로 교황이 자유의사로 사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획기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로마 교황청 라테란대에서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바티칸의 속사정을 들춘 『인사이드 바티칸』을 번역하기도 했다. 12일 이 신부를 전화로 만났다.

이경상 신부

 -교황 사임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전임 교황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본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선종(善終·죽음을 뜻하는 가톨릭 용어) 하실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육체적 기능이 떨어져도 얼마든지 교황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웅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딕토 교황은 보수적인 분이라는 시각이 많은데 이번에 스스로 사임함으로써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면모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섭정·교회 분열 등 이전의 교황 사임 사례와 달리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교황 직을 그만둠으로써 새로운 1000년을 맞는 교황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전임과 후임 교황이 공존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갈등 소지는 없을까.

 “베네딕토 16세는 은퇴 후 바티칸 언덕 위에 있는 봉쇄수도원에 머물 예정이다. 외부와 접촉하지 않겠다는 거다. 물론 교황을 지내셨으니 일반 봉쇄수도원처럼 갇혀 지내시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봉쇄수도원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결코 섭정하지 않겠다는 사인이다. 현직에 모든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베네딕토 교황은 보수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걸프전에 반대하는 등 몇몇 사건을 계기로 서방 언론과 틈이 벌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미지가 생긴 거 아닐까.”

 -지난해 11월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열어 가톨릭의 나갈 방향을 모색하는 등 최근까지도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시노드는 본래 교황청의 프로토콜(규약)에 예정돼 있던 거다. 가톨릭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2차 바티칸 공의회(1962) 5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전세계 교회가 함께하는 거지 교황이 갑자기 시노드를 소집한 게 아니다. 건강이 나쁘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임했으니 이상하다, 이런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선데이서울 식 일부 외신보도를 국내에서 따라가서는 곤란하다.”

 -흑인 교황이 나올 가능성은.

 “(사견임을 강조하며) 이탈리아 출신이 다시 교황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수백 년간 이탈리아인이 교황을 하다가 최근 두 차례 비(非)이탈리아인이 교황을 했다. 아직 아프리카 출신 고위 성직자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분이 새 교황이 되든 획기적 변화는 예상되지 않는다. 가톨릭은 그렇게 확확 바뀌지 않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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