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 정계 대모 하토야마 야스코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96년 도쿄 하토야마기념관에서 야스코(가운데)와 구니오(왼쪽), 유키오. [지지통신]

하토야마 유키오(66) 전 일본 총리의 모친 하토야마 야스코 여사가 11일 오후 장기부전 증세로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90세.

 세계적 타이어 업체 ‘브리지스톤’의 창업주 고 이시바시 쇼지로의 장녀인 야스코는 막대한 재력과 카리스마로 일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일본 정계의 ‘갓마더(godmother·대모)’로 통했다. 초대 자민당 총재였던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의 며느리로 하토야마 가문에 들어간 야스코는 ‘하토야마 가문의 마르지 않는 돈줄’을 자처했다.

 남편 하토야마 이이치로가 총리가 아닌 외상에 머문 채 정계를 떠나자 “아들은 반드시 총리로 만들고 말겠다”며 장남 유키오와 차남 구니오(55)의 정치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먼저 부친인 이시바시 쇼지로가 외손자(유키오, 구니오)에게 생전에 브리지스톤 주식을 대량 증여하도록 했다. 1996년 두 형제가 ‘형제 신당’을 내걸며 민주당을 창당할 때는 창당자금 21억 엔 중 16억 엔을 야스코가 내놓으며 “이 돈으로 당을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유키오의 재산 86억 엔(약 1000억원) 중 65%는 브리지스톤 주식이며, 고급 저택촌인 도쿄 덴엔초후의 자택(6억5000만 엔), 홋카이도의 집(6000만 엔), 현지 사무소(3600만 엔)도 모두 야스코가 사준 것이다. 동생인 구니오(총재산 89억 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형제의 재산을 다 합해봐야 야스코의 재산(약 180억 엔)에는 미치지 못한다.

 2009년 유키오의 비서가 위장헌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을 때 야스코가 7~8년간 매달 1500만 엔을 유키오에 보내 온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됐다. 당시 서면조사를 받은 야스코는 “유키오의 입장 상 여러가지 돈이 들 것으로 봤다. 유키오는 (내가 돈을 보내주는 걸) 모를 것”이라고 아들을 옹호하기도 했다.

  단지 재력 만은 아니었다. 카리스마와 저돌적 추진력이 야스코의 전매특허였다. 대학 교수로 있던 유키오를 정계 입문시킨것도 그였다. 남편인 이이치로가 “정치는 나쁜 인간들이 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말리자 “가만히 계세요. 내가 정치를 시키겠습니다”고 한 뒤 바로 도쿄 도심에 사무실을 구입했다. 유키오에 앞서 정계 입문한 구니오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몰래 구니오의 손을 잡고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자민당 간사장의 집을 찾은 야스코는 다나카와 담판을 벌여 구니오를 그의 비서로 채용하게 했다.

 야스코는 해결사였다. 유키오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중 유부녀인 네 살 연상의 미유키와 사랑에 빠져 미국에서 결혼할 때 야스코는 미국을 찾았다. 아무도 몰래 미유키의 전 남편을 찾아가 고개 숙여 용서를 빌었다. 유키오가 96년 홋카이도의 술집 여성과 불륜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도 미유키로 하여금 “처자와 멀리 떨어져 얼마나 쓸쓸했으면…”이란 ‘명대사’를 내놓게 한 것도 야스코였다. 유키오가 노래방에서 늘 열창하는 노래 또한 ‘어머니’다

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