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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봤자 감방 가겠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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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보험사기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10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보험사기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은 211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보험범죄자 796명 중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10.6%인 84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년 이하의 징역이 대부분(92.8%)이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방화 등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보험범죄자 10명 중 9명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난 셈이다.

 사법처리된 보험범죄자의 574명(72.1%)은 벌금형을 받았으며,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이 138명(17.3%)이었다. 이들이 보험사로부터 뜯어낸 부당 보험금은 총 144억원으로 1인당 1800만원에 달했다.

 보험사기 유형별로는 최근 들어 실손의료비·상해·건강악화 등을 보장해주는 장기보험 사기가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의 ‘2012년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현황’에 따르면 이 같은 장기손해보험 사기 규모는 465억원으로 전체 보험사기의 20.8%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에는 이 비율이 12.6%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자동차보험 사기의 경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3.5%로 여전히 가장 높지만, 비중은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장기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은 입원·치료가 끝난 뒤 보험금 청구가 이뤄지므로 사기 혐의를 입증하거나, 이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생명보험사에서도 판매하는 보험까지 감안하면 보장성 보험을 노리고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업별로는 일용직·무직자들이 적발된 4만54명 가운데 26.5%(1만621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회사원이 17.9%(7148명), 일반 자영업 종사자가 9.0%(3589명)로 뒤를 이었다.

 보험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가 보험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범행에 성공하면 상당한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어 별다른 죄의식 없이 보험범죄에 뛰어드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보험연구원 김세중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이미 발생한 보험사기를 적발하거나 보험사기 혐의자를 사후에 검거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보험사기로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예방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책임에서 벗어날 순 없다. 금감원이 2005년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 보험사기 혐의로 적발된 4만 명을 분석한 결과 1인당 평균 9.8건의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이내에 5건 이상의 보험에 집중 가입한 사람도 4000명이 넘는다. 보험사 스스로 판매 경쟁에 매몰돼 중복 가입자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손해보험사 임원은 “보험사 간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과 실적 압박 때문에 보험사기 가능성이 있는데도 가입을 묵인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보험사 스스로 가입 단계부터 심사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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