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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사망후 해외여행간 어머니 조사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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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정준택 국장과 직원들이 지난달 30일 자동차 사고 가해자·피해자 공모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대성 팀장, 정 국장, 박재만 조사역, 채영현 선임조사역. [김도훈 기자]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조정석 수석은 과거 보험 관련 서류를 뒤적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2010년 가스 중독사고로 아들이 사망해 양어머니가 보험금을 타 간 사건이었다. 당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망 1개월 전에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양어머니가 보험금을 받자마자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 조 수석에겐 미심쩍었다. 결국 금감원과 경찰은 사건을 재조사해 양어머니가 수면제로 아들을 잠들게 한 뒤 연탄가스에 중독시켜 숨지게 한 사실을 밝혀냈다. 양어머니는 지난해 말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한국의 보험시장 규모는 세계 8위다. 그만큼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도 많다. 수법은 갈수록 지능적이고 다양화하고 있다. 하지만 뛰는 사기꾼 위에 나는 조사관들이 있다. 보험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금감원 보험조사국과 생명·손해보험사 특수조사팀(SIU)이 그들이다.

 금감원 보험조사국은 5개 팀 42명으로 이뤄져 있다. 보험범죄가 확산되면서 지난해 보험조사실에서 ‘국’으로 승격시키고 1개 팀을 보강했다. 보험조사국은 자체 시스템을 활용,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건들을 분석하고 자료를 모아 수사 당국에 제공한다. 증거를 찾기 위해 직접 현장에 출동해 목격자를 찾고 주변을 탐문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준택 보험조사국장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을 때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정설을 따른다”며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던 사람이 야밤에 술 마시러 걸어서 집을 나서는 등의 황당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조사 범위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A씨는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는 서류를 근거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중국 XX지역 한인회장’이라는 직함까지 갖고 있는 A씨에게 보험사는 큰 의심 없이 보험금을 내줬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10개가 넘는 보험에 집중적으로 가입한 게 수상했다. 입원기간 중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보험조사국 조사관들은 중국 현지의 병원을 직접 방문해 A씨가 허위로 입원한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A씨는 보험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험사들도 자체적인 보험사기 SIU를 구축해 보험사기를 조사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SIU 인원은 생보업계 150여 명, 손보업계 250여 명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경찰관 출신이며 간호사 등 의료업 경력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다.

 B씨는 최근 다섯 차례에 걸쳐 치조골 이식수술을 받았다며 삼성생명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그가 제출한 X선을 꼼꼼히 들여다보니 모두 같은 귀고리가 찍혀 있었다. 이식수술을 한 번 하고는 다섯 번이라고 속인 것이다. 삼성생명 SIU 유철 과장은 “간호사 출신 조사관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와 의사가 공모한 보험사기를 밝혀낸 건”이라며 “예전에는 개인이 혼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7년 2045억2400만원이던 보험사기 피해액은 2011년 4236억5400만원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보험사기에 연루된 인원도 같은 기간 3만922명에서 7만2333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보험사기 피해 규모는 2236억9700만원, 4만54명에 달한다. 금감원은 하반기 집계가 나오면 또다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사기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수법이 흉포해지고 있다. 고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병원·정비업체 등과 짜고 계획적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배우자가 죽었다고 속이거나, 보험에 가입한 뒤 일부러 자기집을 방화하는 ‘무데뽀’형 범죄도 여전하다.

 연령과 국적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다. 고의성 여부를 가려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적발돼도 처벌이 약하다 보니 남녀노소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보험사기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2011년 적발된 보험범죄 관련자 중 10대는 952명으로 2009년(508명)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은 최근 북한에서의 병력(病歷) 조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보험사기를 저지른 탈북자들을 잇따라 검거했다.

 한화생명 SIU 서인천 조사실장은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보험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수법도 갈수록 치밀해져 범죄를 입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보험사기의 피해는 결국 고객에게 돌아간다. 보험사기로 보험금이 낭비되면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선량한 보험 가입자만 돈을 더 내게 되는 셈이다. 보험사기로 한 해 동안 새어 나가는 보험료는 3조4000억원 수준이다. 금감원은 보험사기로 가구당 20만원, 1인당 7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보험사기는 특별 처벌 조항이 없어 일반 사기죄로 취급돼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특히 초범이면 기소유예에 그치는 일이 대부분이다.

 금융감독원 정준택 보험조사국장은 “다른 범죄에 비해 처벌이 가볍다 보니 재범률도 높은 수준”이라며 “선진국처럼 보험사고 조사기관에 어느 정도 조사권을 부여하고, 형법에 보험사기 처벌조항을 따로 만들어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주별로 보험사기 방지법을 제정해 보험사기에 대해 높은 죄형을 부과하고 있다. 또 보험 관련 서류에 보험사기 경고문구 게재를 의무화하는 등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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