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TBC ‘꽃들의 전쟁’서 악녀 역할 맡은 김현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그녀의 사극 출연은 2001년 MBC ‘상도’, 2004년 KBS 시대극 ‘토지’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토지’ 는 스스로 “슬럼프가 한창이었다”고 말하는 작품. 출연을 결정한 이유부터 물었다.

 “일단 김현주 하면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배역이란 게 끌렸다. 배우들은 항상 변신을 갈망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도 봐주는구나, 신선했다. 사실 사극은 나랑 잘 안 맞는 장르였다. 어려서 사극을 했는데 작품도 힘들었고 흥미를 못 느꼈다. 한창 어린 배우니까 예쁜 옷 입고, 또래 배우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았던 거다. 물론 이제는 사극, 현대극 떠나서 캐릭터나 작품 위주로 보게 됐고, 특히 이번 후궁 조씨 역은 사극에서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캐릭터라 끌렸다.”

 -평소 착하고 밝은 이미지라 악녀, 요부 변신이 궁금하다.

“단순히 악녀라고는 생각 안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에 솔직한 여자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상황에 따라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다. 타고나길 못돼 보이기보다는 납득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져야 시청자가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악녀라기보다는 강한 여자다. 사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처럼 여자들에게는 독립적인 삶을 꿈꾸면서 마음 한편에 좋은 남자 만나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나. 조씨도 그런 욕망을 드러냈을 뿐이다. 요부 연기는, 나도 새로운 도전이니 이 기회에 치명적인 유혹, 이런 거를 배워볼까 한다.(웃음) 얌전이가 비를 흠뻑 맞으면서 온몸으로 (자극을)느끼는 등 요부가 되기 위해 연마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선배님들이 많이 배우라고 하신다. 하하.”

 -10대 후반으로 시작해서 20여 년 세월을 연기해야 한다.

 “극중에 몇 살이라고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점차 외양이나 연기가 달라져야 하니 어려움이 많다. 그 출발점인 어린 얌전이의 연기 톤을 잘 잡는 게 아주 중요하다. 악녀, 요부 연기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얌전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해갈 수 있도록 포석을 잘 깔아놔야 하는 거다. 처음엔 얌전이가 쉽게 안 잡혀서 제작진에 한복을 달라고 했다. 극중 의상을 입으면 그 인물이 잘 다가오기도 하니까.”

 -정하연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좋아하는 작가다. 일단 대본이 재미있다. 캐릭터를 살아있고 선명하게 쓰시는데 그러면서도 상세한 묘사는 생략한다. 배우가 채워가는 재미가 있다.”

-연기 준비는 어떻게 하나.

 “대본을 많이 본다. 대본에 메모를 엄청 많이 한다. 별말을 다 써놔서 남들한텐 창피해서 못 보여줄 정도다. 미워하는 상대가 나오면 욕도 써놓고. 대본을 맨 처음 읽을 때 시간을 많이 들인다.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 읽으려고 한다. 이렇게 처음 읽을 때 대사의 60~70%도 외운다. 대사라는 것이 외우자 해서 외워지는 게 아니다.”

 -남편인 인조 역이 대선배 이덕화씨다. 대립각을 세우는 소현세자빈 송선미씨와는 라이벌 구도다.

 “이덕화 선배님은 우리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극중 엄마인 정선경 언니가 평소 이덕화 선배님을 오빠라고 불러서, 나도 오빠라고 불러보자 했는데, 영 어색하다. 특이하게 나는 나이 많은 선배님, 선생님들하고 연기를 많이 했다. 데뷔작 ‘내가 사는 이유’(MBC·1997)에서도 어린 작부로 나왔는데, 첫 키스신의 상대가 고 김무생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들하고 연기하는 건 덕을 많이 본다. 연기 경험이 많아서 상대를 끌어주고, 상대 캐릭터를 살려준다. 송선미씨는 극중 라이벌인데, 사실 조씨는 소현세자빈 말고도 궁궐 안 모든 사람들이 라이벌이다. 외롭고 불쌍한 여자다. 그런 점도 연기의 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2000년대 중반 꽤 오래 슬럼프를 겪었다면서.

 “어려서 연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그래서 배우로서의 사춘기가 뒤늦게 왔다. 내가 도대체 배우인가, 그저 TV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가, 왜 내 연기는 이 모양인가, 자책했다. 2년째 작품을 못하다가 ‘인순이는 예쁘다’(KBS·2007년)로 컴백했는데, 극중 자신을 찾아가는 인순이라는 역할이 당시 실제 내 모습이었다. 출연을 결정한 것도 인순이의 독백, “난 괜찮아, 난 예뻐, 난 훌륭해” 때문이었고. 나를 이입하면서 연기했고, 작품을 끝내면서 나도 인순이처럼 힐링하면서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연기자로서 어떤 상황인가.

 “사춘기의 끝 무렵? 훨씬 안정됐다. 물론 연기는 여전히 고민이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 예쁜 몸을 만드는 것, 음악 듣고 감성 키우는 것, 좋은 생각 많이 하는 것, 아니면 생각을 텅 비우는 것, 이것저것 다 해본다. 그래도 답을 모르겠는데, 다만 좋은 배우의 공통점은 좋은 사람이란 건 알겠다.”

 -가족들은 어떤 의미인가.

 “어려서부터 일을 해 가족과 같이 시간을 많이 못 보냈다. 개인적인 부침을 겪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했고. 요즘 들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소중함도 새삼 깨닫는다. 특히 남동생이 결혼해 6살, 4살, 2살 조카가 있는데, 내가 조카바보다. 이제 막 고모가 연예인인 줄 아는 큰조카 유치원 행사도 간다. 조카사랑으로 대리만족해선지 정작 내 결혼 생각은 없으니 이것도 문제인가?”(웃음)

글=양성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