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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불신 맞서 “계약금 내 돈으로 먼저 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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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 24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쥔 모습. 올해 신년 임원워크숍에서 특강을 하던 중 찍힌 사진이다. [사진 동부그룹]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 계약이행보증금은 우선 내 개인 돈 135억원으로 내라.”
동부그룹 김준기(69) 회장은 지난해 8월 22일 대우일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이같이 지시했다. 김 회장의 강한 인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에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었다. 동부컨소시엄은 내부적으로 대우일렉을 인수하기 위해 동부하이텍 등 전자계열사들이 자금의 51%를 담당하고, 재무적 투자자인 KTB프라이빗에쿼티 등이 49%를 분담하기로 돼 있었다. 동부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직전까지 연막을 피우며 극비작전을 벌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장 시장의 우려로 연일 계열사 주식들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돈도 없는 회사가 덩치 큰 대우일렉을 인수하면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가 다시 토해냈듯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논리였다. 한마디로 빚이나 갚지 무슨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이냐는 채권단의 비아냥이었다. 동부는 부채비율이 249% 수준으로 재무평가 기준에 미달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 중인 기업이다.

결단의 순간들 ② 대우일렉트로닉스 거머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이기태 전 부회장 측과 신경전 벌이기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부는 입찰에 참여하면서도 채권단에 공개하지 말 것을 특별히 부탁해야 했다. 당시 ‘P기업’으로만 공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당초 이 입찰에는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케이더인베스트먼트와 부실기업 인수 전문업체인 삼라마이더스, 미국 사모펀드 원록, 독일 가전업체인 보쉬지멘스, 스웨덴 가전업체인 일렉트로룩스 등 5개 업체가 참여 의사를 밝혀 경합을 벌였다. 겉으로 보기에 동부는 입찰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시장에는 동부가 이 전 부회장의 케이더인베스트먼트 아니면 삼라마이더스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최종입찰 뒤 뚜껑을 열자 가장 비싸게 인수가를 적어낸 ‘P기업(동부컨소시엄)’이 실체를 드러냈다. 김 회장의 대우일렉 인수를 위한 치밀함과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김 회장은 왜 그토록 대우일렉 인수를 원했을까.

먼저 그의 머릿속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평소 지론을 봐야 한다. 김 회장은 ‘거대담론’을 자주 한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자칫 가식적인 언행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국가’ ‘민족’에 대한 의식이 컸다”고 말한다. 공석이나 사석에서 “나라를 위해서라면 망해도 좋다”라고 자주 말하는 식이다. 대대로 정치인 집안인 데다 아버지는 고 김진만 국회부의장이다. 그는 1969년 24세에 동부건설을 창업한 걸 회고할 때마다 “청년 시절 미국에 갔을 때 거대한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자본주의이고, 그 꽃은 기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기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라고 말한다. 그가 대우일렉을 인수한 논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설명이다. 누가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한 측근 인사가 김 회장으로부터 “100번은 들었다”고 말하는 얘기는 다음과 같다.
“국가적으로 볼 때 일본과 중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생명공학(BT)보다 정보기술(IT)을 육성해야 한다. BT는 기초과학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미국 정도를 빼고는 힘들다. 하지만 IT는 기술과 인력 측면에서 우리가 참여할 만하다. 그래서 내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반도체를 끌고 왔다. 특히 종합전자산업은 일본이 큰 업체만 7개나 되는데 한국은 삼성전자·LG전자 2개 정도다. 따라서 반도체사업을 이미 가지고 있는 동부와 SK는 가전업종에 진출할 만하다. 세계 전자산업도 럭셔리급은 미국 업체 일부, 프리미엄급은 삼성·LG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중남미·중동·CIS 등을 공략하기 좋은 미디엄급은 중국의 하이얼 정도 뿐이다. 따라서 대우일렉이 미디엄급 전자시장에 참여하기 좋은 회사다.”
이 대목에서 김 회장이 반도체에 참여해 최근까지 고전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IT 중에서도 반도체를 눈여겨봤다.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그는 “내 신념이다!”라면서 1995년에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우려가 현실로 닥쳤다.

‘연간 매출 400억원에 적자 4000억원, 부채 2조원’.
이 같은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를 보면 누가 봐도 파산할 수밖에 없는 회사였다. 김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2009년 김 회장은 3500억원의 사재 출연을 했다.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과 재산 매각 등 다각적인 조치들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마침내 동부하이텍은 부채를 2조원에서 6000억원으로 줄이면서 지난해 3분기에는 흑자까지 달성시켰다. 그는 이런 자신감이 있었다. 따라서 김 회장은 지난해 5월께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대우일렉의 매각 입찰을 재개하자 비밀유지를 요청하면서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게 된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때까지만 해도 ‘강한 관심’ 정도였지 확신은 갖지 못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연일 회의를 했다. 대우일렉을 인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하나? 더 싸게 인수하는 방법은 없나? 인수하면 승자의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은? 그는 밀도 있는 회의를 통해 세 가지 인수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로 인수 자금은 부채비율을 늘리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로 대우일렉은 클린컴퍼니가 된 상태로 인수해야 한다. 셋째로 대우일렉과 시너지가 있는 그룹 내 계열사만 인수에 참여한다.
사실 김 회장은 ‘회의 예찬론자’다.
“기업경영에서 회의만큼 중요한 게 없다. 회의를 통해 복잡한 요소를 압축적으로 파악해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 회의를 잘하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그는 거의 매일 출퇴근하면서 수시로 주요 사안을 놓고 회의를 한다. 실무자까지 참석시켜 자세한 설명을 듣는 등 회의를 치열하게 한다. 회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항상 취한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그는 ‘도전, 특명, 뚝심’같은 표현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모든 사안에 대해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신중하게 결론을 내리겠다는 의지다. 한편으론 신중하다는 평을 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겁이 많다는 평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준기 회장의 모교인 강원도 동해시 북평초등학교 내 자신의 글이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사업가는 항상 베스트 컨디션 유지해야”
김 회장은 동부건설로 사업을 시작해 술·담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사업이 점점 커지자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술·담배를 끊었다.
“기업가는 매 순간 건전한 판단을 해야 한다. 따라서 항상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최상의 건강상태와 정신력이 중요하다. 술·담배는 그래서 끊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직접 모든 사업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해명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삼성·LG·현대그룹 등에 비해 아직 도약단계에 있는 기업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챙기는 것이다.”
기획조정실이니 미래전략실이니 하면서 회장을 보좌하는 조직도 없다. 이렇다 보니 동부그룹에는 2인자가 없다는 말을 한다. 김 회장이 세심하게 직접 관여하는 경영 행보와 관련이 있다. 대우일렉 인수의 태스크포스(TF)팀을 이끈 이재형 부회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삼성물산 출신의 전문경영인으로서 신사업 발굴을 담당할 뿐이다.
동부그룹의 주주 현황을 살펴보면 사실 1인자는 김 회장이 아니라 그의 외아들 김남호(38) 부장이다. 그는 2009년 동부제철에 차장으로 입사해 규정대로 3년 뒤 부장으로 승진했다. 김 회장은 1남1녀를 두고 있다. 2007년 김 부장에게 지주회사 성격의 동부CNI 주식 274만 주(11%)를 증여하고 본인은 뒤로 물러서는 수순을 밟았다. 현재 동부화재 등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는 김 회장이 아니라 김 부장이다. 기업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형식적으로 보면 아버지가 아들 회사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모양새다. 어찌됐건 김 회장은 대우일렉 인수에 최대 걸림돌인 채권단(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대우일렉을 인수해도 부채비율을 늘리지 않는 방법으로 하겠다는 논리를 폈다. 김 회장의 개인 돈 300여억원을 투입하고 재무적 투자를 받기로 했다. 더구나 대우일렉의 인수 가격이 2726억원으로 크게 싸진 것도 채권단을 설득하는 데 효력을 발휘했다. ‘탱크주의’로 명성을 날리며 삼성전자·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우일렉(당시 대우전자)은 대우그룹이 1999년 12개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 기업으로 지정돼 수난이 시작됐다. 채권단은 2006년부터 매각을 추진해 1조원대를 호가했다.
하지만 매각 작업이 다섯 차례나 무산되면서 13년 만에 김 회장이 최종 인수를 한 셈이다. 가격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적어낸 3700억원보다 1000억원이 더 싸진 2726억원으로 결정됐다. 실사 과정에서 할인 요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인수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채권단과 동부 측은 인천공장 부지는 인수 대상에서 제외해 별도로 매각하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김 회장의 인수를 위한 치밀한 작전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총동원한 결과다. 마침내 채권단 측도 부채비율만 늘어나지 않는다면 동부가 신성장 동력을 위한 대우일렉 인수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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