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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박정환의 ‘골 결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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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본선 16강전)
○·박정환 9단 ●·종원징 6단

제11보(131~140)=중앙 흑 대마가 위기 상황인데요, “죽음 쪽이 60%”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대마불사’라는 격언을 감안하면 ‘60%’는 거의 사망 선고로 들립니다. 그러나 바둑에도 축구처럼 ‘골 결정력’이란 게 있습니다. 골문 바로 앞에서 차도 공이 하늘로 치솟듯 바둑에서도 다 끝났다 생각할 때 뒤집힌 바둑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고수들 바둑에서 왜 그런 일이 생기느냐고 묻지만 사실은 지금부터가 어려운 겁니다. 다 잡은 고기라 해도 마지막 초읽기 속에서 수순을 제대로 밟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131에 132, 134의 차단은 당연한 수순이고요. 여기서 흑이 135, 137로 두자 흑 대마에 금방 화색이 돌고 있습니다. 대마는 A 쪽에 후수 한 집이 있고 135 쪽에도 집이 있고 또 상변과의 연결도 보고 있습니다. 박정환 9단은 힘없이 138에 둡니다. 연결을 차단하는 수지요. 한데 여기서 종원징의 낯빛이 빨갛게 달아오르는군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실은 이 138의 차단이 매우 은밀한 강타였습니다. 이 수는 ‘참고도’ 백1~7까지의 패로 통째 잡는 수를 노리고 있습니다. 팻감이라면 백에겐 B 쪽에 거의 무한대의 팻감이 있어서 흑이 견딜 수 없습니다. 패는 흑이 무조건 진다고 보면 되는 거지요. 종원징은 139로 살았고 박정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140 압박합니다. 뒷문을 단속한 뒤 대마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수순인데요, 정교하고 빈틈없는 ‘골 결정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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