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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축물 휴식·편의 시설 등 개방 공간 ‘있으나 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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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지역 대형 건물에 조성된 공개공지가 시민들의 인식 부족, 관리 미흡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공개공지에 설치된 데크와 조형물. 오른쪽은 분리수거장으로 변한 지하주차장 옆 공개공지. [조영회 기자]

대형 건축물 상당수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개방 공간을 허술하게 관리하거나 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면서 이용률이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시는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 대형 건축물을 대상으로 공개공지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공개공지는 건축주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유 공간이지만 건물을 이용하거나 보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보행로와 가까운 곳에 휴식 및 편의, 경관 시설 등을 설치해 24시간 개방해야 하는 공간이다. 천안시 건축 조례안에 따르면 연면적의 합계가 5000㎡ 이상 1만㎡ 미만인 경우 대지 면적의 6%, 1만㎡ 이상 3만㎡ 미만인 경우 8%, 3만㎡ 이상인 경우 10%이상 확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개공지는 건축주나 설계자의 경제적인 이유와 시민들의 인식 부족 등으로 형식적이고 제도적 요건에 맞춰져 있을 뿐 상당수 건물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실제 천안시 신부동 랜드마크 타워의 경우 건물 전면에 공개공지가 확보돼 있지만 안내판이 없어 이를 알아 보는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의자를 비롯해 파라솔이나 파고라와 같은 휴식·휴게시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공간 안에는 나무재질의 난간(데크)을 설치해 보도와의 접근성도 쉽지 않았다. 조형물과 자전거 보관대를 설치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부는 파손됐고 주변에는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이 쌓여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신부동 포스빌 역시 건물 전면에 공개공지가 있지만 안내판이 없는 데다 휴대폰 매장과 부동산 사무실 등 가게를 알리는 입간판이 놓여 있어 사실상 업체 홍보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의자가 곳곳에 모여 있었지만 청결상태가 좋지 않아 시민들이 이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건물 뒤편에 50㎝ 정도의 공간은 공개공지인지 조차 구별하기 힘들었고 일부 공간은 음식물쓰레기통이 외부에 드러난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나마 건물 옆으로 조경수와 조형물이 설치된 점은 긍정적이었다.

 이와 관련, 나사렛대학교 부동산학과가 최근 천안지역의 대표적인 대형 건축물 10곳에 조성된 공개공지 현황과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 건축물이 공개공지를 부실하게 관리·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대상 건축물은 이마트 쌍용동점과 홈플러스 신방점, 갤러리아 백화점, 롯데마트 성정점, 신세계 백화점(아라리오 광장) 등 유통시설, 신부동 포스빌과 랜드마크 타워, 삼부르네상스 등 상업시설, 충무병원, 순천향대학교병원 등 대형 의료시설이다. 조사 항목은 접근성(위치와 장애물 여부)·식별성(안내판 설치 여부 및 접근성)·편리성(편의시설 설치 및 개수)·개방성(이용불편 여부)·관리성(시설물 파손 및 타 용도 사용 여부)·조화성(주변과의 조화 여부) 등 6개 항목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모든 건축물이 공개공지 안내판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건축법 시행령에는 ‘공개공지 등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임을 알기 쉽게 국토해양부령으로 정하는 표지판을 1개소 이상 설치할 것’이라고 규정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시민들이 공개공지 자체를 구분할 수 없어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대형마트와 같은 판매·유통시설들은 대체적으로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일부 시설은 공개공지에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편의·휴게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공개공지에 식수대를 설치했다가 관리상 어려움을 겪자 폐쇄하거나 있어도 형식적이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특히 판매시설은 고객을 건물 안으로 유도하기 위해 건물 외부보다는 내부 시설에 편의시설을 치중하는 등 공개공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신세계 백화점 앞 아라리오 광장과 순천향대병원은 공개공지에 각종 조형물과 분수대를 비롯해 의자, 가로등과 같은 조경·휴게시설을 잘 갖춘 데다 청결상태도 좋아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대조를 보였다.

 김행조 나사렛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모든 건축물이 공개공지 안내판이 없어 시민들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특히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용 빌딩이나 오피스텔 건축물의 경우 분양 이후 특정인이 관리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어서 공개공지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공개공지를 확보해야 하는 건물이 현재 조사한 대상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공개공지를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실태를 파악하고 ‘공개공지 정비 및 관리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건축물 준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개공지를 유지·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태우 기자

◆공개공지=사유지 내의 옥내 또는 옥외 공간 중 시민의 보행과 휴식을 위해 개방된 공간이다. 연면적 합계가 5000㎡ 이상인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운수시설, 업무시설 및 숙박시설에 해당하는 건축물은 대지면적 대비 일정 면적 이상의 공개공지를 확보해 의자, 파고라 등을 설치해야 한다. 공개공지를 설치하는 건축물에는 용적률, 높이 제한 완화 등의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건축법 43조와 건축법 시행령 제27조 2항에 규정돼 있다.

◆공개공지 관련 천안시 건축 조례안 내용=연면적 합계가 5000㎡ 이상 1만㎡ 미만인 경우에는 대지 면적의 6%, 1만㎡ 이상 3만㎡ 미만인 경우에는 대지 면적의 8%, 3만㎡ 이상인 경우에는 대지 면적의 1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아리리오는 과거 건축 당시 8%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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