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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변화 가져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수년 전, 노인요양시설에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갔다. 참여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했다. 젊은 날에는 나름 안정된 직장에서 많은 성취감을 경험했을 어르신들이셨다. 첫 시간 각자의 소개를 하는데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난 사람을 한 번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척 알아.”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저 좀 봐 주세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했다.

그 분은 “깔끔하고 단아한 사람” 이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처음부터 뾰족한 얼굴이 마음에 걸렸던 한 분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여우같이 생겼어, 깍쟁이! 자기 몸은 절대 못 만지게 할 것 같아. 치와와야” 라는 말을 내 뱉었다. 순간 당황했다. 함께 참석한 간호사 두 분이 나에게 계속 눈짓을 보내 왔다. 무시해버리라는 눈치였다.

나중에 간호사로부터, 치료사마다 이 분의 독설로 발길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한 부분을 정확히 표현해 주셨네요. 그리고 바라는 나도 표현해 주셨고요” 라며 웃었다. 그 뒤로도 그분은 날카로운 눈빛과 표정으로 나에게 몇 마디를 더 던졌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그분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힘들고 지친 외로운 자신을 그림마다 담아내는 것을 보았다. 젊은 날 올림픽 권투선수로 금메달을 획득하신 그 분은 아직 힘이 있음을 주변에 보여 주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간호사들은 그분이 다른 프로그램 때 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다고 귀띔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그분은 내 뒤통수에 대고 “당신 참 솔직한 사람이야” 라고 말했다. 처음 ‘치와와야’ 라고 했던 말투와는 많이 달랐다. 무엇이 그분의 말투를 바꾸게 했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을까? 그분이 던진 말에 대한 나의 응답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래 전에 본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말썽꾸러기들이 모인 영국의 한 빈민가 학교에서 흑인선생님이 학생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부임해오는 교사들마다 학생들의 말썽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던 그 학교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변화는 “이제 너희들은 성인이야. 나도 너희를 성인으로 대접하겠어”라는 교사의 선언 이후 시작됐다.

교사가 먼저 학생들의 존재를 인정했고 학생들은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법을 배우며 영화는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다. 가족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는 “인간은 다른 사람과 마음 속 깊이 연결될 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존재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 말했다.

누구나 보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속마음이 있다. 스스로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있어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때 보여진 모습에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상대로 하여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도 “게임에 빠질 만큼 집중력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보여진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말을 해 줄 수 있다. 이 말 한마디가 아들을 더 게임에 빠져들게 할까? 아니면 집중력에 초점을 맞춰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그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작은 탑을 쌓게 될까?

윤애란 아산우리가족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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