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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총리 “법관도 정무적 판단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한 비아냥 가운데 ‘기교사법’이라는 용어가 있다. 주문을 미리 짜놓고 거기에 논리를 맞춘다는 거다.”

 28일 친정인 법원을 찾은 김황식 국무총리가 기교사법을 언급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소통과 리더십’을 주제로 판사들에게 강연하면서다. 197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한 김 총리는 대법관을 거쳐 2008년 감사원장에 임명될 때까지 34년간 법관 생활을 했다.

재판에 임하는 법관들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던 김 총리는 “2008년 촛불집회 당시 형사단독 재판장이 피고인들에게 ‘나도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라면서 재판을 진행했다고 한다”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소통을 위한 자세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수원을 지나는지 대전을 지나는지 공감을 하며 가야 한다”며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지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당사자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거 형사 재판장 시절 주문에 ‘피고인을 징역 ○년에 처한다’고 쓰던 관행 대신 ‘피고인의 징역을 ○년으로 한다’고 바꿨던 일을 소개하며 “재판 당사자를 좀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에 익숙한 후배들에게 낯선 화두도 던졌다. 그는 “행정부에 처음 들어가서 가장 낯설었던 게 정무적 판단을 하는 것”이라며 “법관들도 기본은 ‘법적 판단’이지만 이게 가져올 파급효과와 부작용 등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둘기같이 순결하되,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성경 문구를 인용하며 “뱀이 사악한 동물로 그려지지만 때로는 지혜로운 것처럼 온갖 지혜를 동원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우리가 공직자로서 국민 신뢰를 받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과거 (대법관) 후보자가 내린 판결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분석하는 걸 보니 ‘법관 하기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시빗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소신을 관철하지 못할까 걱정된다”며 “나중에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당당하게 판결해 주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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