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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 케말 파샤의 반만 닮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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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하 경칭 생략)은 정계에 입문하면서 “아버지의 못다 한 유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흔히 케말 파샤로 불리는 터키의 국부(國父)다. 그는 전쟁터를 누볐으며, 앙숙인 그리스군을 물리친 무인 출신이다. 1922년에 600년간 지배해온 오스만튀르크의 술탄체제를 쿠데타로 뒤엎었다. 박정희도 해병대를 이끌고 한강대교를 건넜다.

 BBC 기자가 쓴 일대기에는 근대 공화정을 확립하고 경제 발전에 매진한 케말의 피와 땀이 담겨 있다. 물론 독재의 얼룩도 남았다. 케말은 반대파를 숙청했고, 3번 연임해 종신대통령에 올랐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그 다음부터 갈린다. 케말은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대통령을 해 먹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1000일간의 결혼생활을 접고 끝까지 독신을 고수했다. 그는 재산을 모두 정부에 넘기고 “나를 위한 기념관은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내 시신을 땅에 묻되, 빈 두 손은 무덤 밖으로 보이게 하라”던 알렉산더 대왕과 닮았다.

 케말은 1925년 복장개혁을 단행했다. 무슬림은 기도할 때 모스크에 일렬로 서서 이마를 땅에 댄다.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게 테두리 없는 ‘페즈’가 전통이었다. 하지만 바깥에서 뜨거운 햇볕을 가릴 챙이 없는 게 문제였다. 케말은 서양식 모자를 쓰라고 했다. 이 ‘모자착용법’은 우리의 ‘단발령(斷髮令)’과 똑같다. 1년간 20여 명을 교수형에 처할 만큼 혹독한 반발을 불렀다.

 더 큰 문제는 여성의 히잡(얼굴을 가리는 베일) 금지령이었다. 케말은 “여성도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겁이 났다. 총칼로 누르기도 애매한 사안이었다. 케말은 고민 끝에 이색 법률을 만들었다. “모든 매춘부는 어디서나,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고.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웠다. 케말의 정치적 상상력은 법치주의를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터키 여성들이 스스로 히잡을 벗어던진 것이다. 유난히 법과 원칙을 앞세우는 박근혜가 눈여겨봤으면 한다.

 케말의 곁에는 항상 무스타파 이스메트가 있었다. 포병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청력의 일부를 잃었다. 터키의 운명이 걸린 로잔협상 때의 일이다. 이스메트는 영국 등이 압박하면 보청기를 끄고 딴청을 부렸다. 결국 상대방이 나가떨어졌다. 터키로 초빙된 이탈리아 조각가는 무솔리니에게 이런 비밀 보고서를 보냈다. “케말의 옆에 이스메트가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다. 뛰어난 통찰력과 융통성으로 그의 결점을 완벽히 보완한다.” 어쩌면 박근혜가 보청기를 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를 지명한 것도 이스메트를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스메트는 오랫동안 총리를 지냈다. 그는 밤새 케말과 술을 마시며 서슴없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곤 다음 날 슬며시 “귀가 어두워 각하의 마음을 어지럽혔을까 두렵다”는 충성의 편지를 보냈다. 케말은 지체 없이 답장을 썼다. “당신 편지를 읽고 내가 흐느꼈다면 믿겠소? 나는 당신을 좋아하오.” 이스메트는 현실주의에 입각해 행정을 요리하며 케말의 이상주의를 보완했다. 후임 대통령으로 12년간 지내며 케말의 유언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케말은 터키에서 신화적 존재로 군림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벽시계는 지금도 그가 숨진 1938년 11월 9일 9시5분에 멈춰져 있다. 터키의 형법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를 반(反)국가 범죄로 다스린다. 생전에 박정희도 케말을 롤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케말의 반열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이제 그 나머지 반쪽 신화가 완성될지는 박근혜에게 달렸다. 2년 전 박근혜도 ‘형제의 나라’에 들른 적이 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이례적으로 돌마바흐체 궁전의 화려한 샹들리에를 모두 밝혔다. 그 환한 궁전에서 박근혜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케말의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과 훌륭한 참모를 가려내는 안목을 얼마만큼 떠올렸을지 궁금하다. 솔직히 아직은 그 절반도 안 닮은 느낌, 떨치기 어렵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