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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불완전한 공약의 완전한 이행은 불가능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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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연일 강도 높은 공약 실천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굳건한 의지로 실천해 간다면 우리가 하려는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다”며 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공약 수정론’을 일축했다. 박 당선인은 이어 “내가 (공약이나 정책을) 약속하면 여러분(인수위, 정부)이 지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번 내놓은 약속(공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당선인의 철학과 소신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정치를 불신의 늪에 빠뜨린 원인의 하나가 역대 정권과 정치인들의 약속 불이행이었다는 점에서 박 당선인의 공약 실천의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서 ‘공약의 완전한 이행’을 거듭 천명하는 것이 과연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 현명하고 바람직한 처신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공약의 완전 이행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우선 공약 자체가 모두 실현 가능할 만큼 완벽하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여러 공약은 현실성이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았거니와 시행의 우선순위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또 서로 상충되는 공약이 있을 수 있고,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 마련이 당초 예상보다 어려워질 수도 있다. 공약 자체가 완벽할 수 없다면 그 공약의 완전한 이행도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공약을 무리하게 시행하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신뢰의 손상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이 굳이 ‘공약 실천’을 앞장서서 천명하는 것은 자칫 박 당선인과 새 정부의 신뢰성을 위협하는 족쇄가 될 우려가 크다. 박 당선인이 가진 말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이미 박 당선인의 의중을 헤아려 인수위와 정부, 새누리당에서는 ‘공약 수정론’과 ‘완급 조절론’이 쑥 들어갔다. 누구도 당선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판에 당선인이 “내가 약속하면 여러분이 지켜야 한다”고 하면 공약의 적절성과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독선과 권위주의의 기운을 걱정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통치권자다. 대통령이 국민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우선적인 약속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대원칙에 비추어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개별 공약들은 부차적이고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공약이라는 작은 약속에 매몰돼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더 큰 약속을 허물어서는 곤란하다. 박 당선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포괄적인 원칙만을 밝히는 것으로 족하다. 개별 공약의 실천 여부와 우선순위는 전문가인 인수위원과 정부 관료들이 충분히 검토해서 현실적인 실천방안을 만들도록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