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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평행선, 독·불처럼 청년 교류로 풀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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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2일은 유럽의 오랜 앙숙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우호조약을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 대사(왼쪽)와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가 지난 17일 서울 동빙고동 독일대사관에서 만나 반세기 동안의 양국 관계 발전을 돌이켜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1963년 1월 22일 프랑스와 독일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우호조약(엘리제 조약)에 서명하고 역사적 화해를 했다.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랭스 대성당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양국의 결혼식을 연상시킨 세기의 이벤트 후 두 나라는 급속히 가까워져 유럽 통합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됐다. 조약 체결 반세기를 맞아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와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 대사가 17일 만나 양국 화해의 의미를 되새겼다. 양국의 경험은 갈등의 골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한국-일본 관계에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두 대사는 입을 모았다.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

-50년 전 양국의 화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롤프 마파엘(주한 독일 대사·이하 마파엘) “양국 정부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 줬을 뿐만 아니라 국민 간 교류가 이뤄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오랜 앙숙 관계였던 양국이 우호조약을 통해 운명공동체로 완전히 바뀌었다.”

 ▶제롬 파스키에(주한 프랑스 대사·이하 파스키에) “아데나워 총리와 드골 대통령의 양국 상호 방문이 화해의 초석이 됐다. 엘리제 조약은 양국 협의 없이는 어떠한 중요한 결정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부의 각 부서는 상대국의 담당자를 정확히 알고 있고, 정기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국은 독자적인 관계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관계는 새 유럽 건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양국 사이의 적대의식이나 불신이 사라졌나.

 ▶파스키에 “솔직히 말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세대 간의 교류는 적대의식을 없애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프랑스·독일 청년사무소(FGYO)가 63년 설립된 이후 프랑스와 독일 청년 800만 명 이상이 30만 건 이상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프랑스와 독일 쌍두마차가 주는 자극은 유럽 전체에도 큰 득이 되고 있다.”

 ▶마파엘 “여론조사를 보면 90% 정도가 양국 관계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EU) 내에서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뿐 아니라 2200개의 도시 간 제휴관계도 맺어져 있다.”

 -당시 양국의 목표나 시각, 정치적 계산법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던 걸로 안다.

 ▶마파엘 “EU의 미래와 정치적 통합 문제에 대한 접근법에 차이가 좀 있었다. 프랑스는 ‘조국의 통합’ 개념처럼 독자성을 중시한 반면, 독일은 연방주의나 유럽 통합을 선호했다. 이처럼 접근법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우리는 전진했다. 진짜 비결은 우리가 항상 전진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항상 함께 전진하지 않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협상하고 타협할 것이다.”

 ▶파스키에 “양국 간 우호조약은 고전적 의미의 외교적 조약을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고 논의한다. 과거에 많은 아픔을 남긴 대결구도를 종식하기 위한 열망이 양쪽 모두에 강했던 것 같다. 유럽이 이렇듯 오랜 기간 전쟁을 겪지 않은 적은 없었다. 양국의 감정이나 문화적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정당한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우호관계의 풍요로움이 되는 것이며, 다른 유럽 협력국의 감성적 다양성에 우리가 열려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기까지 지도자들의 결단과 리더십이 중요했다고 본다.

 ▶파스키에 “아데나워 총리나 드골 대통령뿐 아니라 메르켈-올랑드에 이르기까지 양국 지도자들은 대대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유럽의 건설이라는 모험이 대립과 민족주의적 후퇴의 위험으로부터 치료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독일 화해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위대한 성과 중 하나다. 이러한 모델이 다른 지역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마파엘 “‘지도자는 바뀌어도 제도는 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투 트랙의 접근법을 선택했다. 강력한 지도자와 리더십, 그리고 새 지도자들이 들어섰을 때 힘을 발휘하는 시스템. 잘 마련된 제도를 통해 새 지도자들은 양국관계뿐 아니라 EU 무대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빨리 터득한다.”

마파엘 주한 독일 대사

 -아시아에서 화해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파엘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적 관계는 매우 빨리 발전했다. 다른 글로벌 지역에 비해 역내 교역 증대가 두드러졌다. 긴밀한 경제 상호작용이 장기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양국 공통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 차이를 해소하고 있다.

 ▶파스키에 “역사가들이 많은 토론 끝에 2006년 만들었다. 정치적인 논의가 아니었다.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마파엘 “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를 증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은 폴란드와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르면 2014년 독일-폴란드 공동 역사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묘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최근 들어 양국 간에 갈등이 조금씩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 향후 전망은.

 ▶마파엘 “시라크-슈뢰더 때와 비교해 보면 메르켈-올랑드가 더 빠른 속도로 해법을 찾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중앙집권화돼 있고 국가의 영향력이 큰 편이다. 독일과는 다른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이한 문화와 사고방식에 기초해 함께 일하고 만들어낸다. 우리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간다. 그래서 두 나라의 관계가 낙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파스키에 “지난해 유로화가 붕괴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결국 무너지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토론하고 해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긴 과정을 거치며 대화하고 협의한다. 사람들은 항상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를 해결해 왔다. 유럽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지도자들이 맺었던 관계를 보면 미래에 대한 전망이 희망적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협력관계가 앞으로도 더 밀접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엘리제 조약=1963년 1월 22일 체결된 독일·프랑스 우호조약.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는 58년 처음 만난 후 수차례의 상호 방문 끝에 4년여 만에 역사적인 공식 화해를 이뤄냈다. 이후 양국은 외교정책과 공통 관심사를 결정하기 전에 정상과 외무장관 정례회담 등을 통해 긴밀히 사전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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