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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아의 여론 女論

욕망에도 자격이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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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최의순은 원체 바탕이 미인인 데다가 걸음걸이 곱고 뒷맵시 고와서 양장도 어울리고 검정 치마 흰 저고리 받쳐 입으면 여학생풍으로도 어울리고 머리 쪽 찌고 긴 치마 발뒤꿈치에 질질 흘리며 노랑 갖신 받쳐 신은 고전적 아씨 되어도 어울리고, 아마 역대 부인 기자 중 넘버 원이야!”(‘장안 신사숙녀 스타일 만평’, 삼천리, 1937.1)

 동아일보 부인 기자 최의순은 미모가 출중해 유명 인사들의 외모 품평회에 항상 등장하던 여성이었다. 또한 도쿄여자고등사범 출신으로 조선 여성 중 처음으로 화학을 전공했다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조선 여자로서 화학 전문은 처음’, 동아일보, 1927.5.11).

 그러나 아직 조선에는 화학교육을 할 만한 설비가 없다며 그녀는 교편을 잡는 대신 동아일보의 기자로 입사하게 되는데, 주위에선 그녀가 기자가 되려는 것을 허영이라며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들에 대해 최의순은 기자 생활이야말로 ‘헌신적 생활’이며 ‘아무나 못해나갈 예리한 감각성과 풍부한 묘기, 큰 노력’을 요하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아울러 ‘현실계에 인정상으로 너무도 참담한 사실들을 밝히고 꼬집어내어 개혁개선을 시켜보겠다’는 자신의 기자로서의 소신을 당당히 밝힌다(‘모던 여자 모던 직업’, 별건곤, 1928.12).

그녀가 유일준,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홍명희 등 명사들의 서재를 방문 인터뷰해 연재한 ‘서재인(書齋人)의 방문기’(1928.12.13~22)는 오늘날의 ‘지식인의 서재’류를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또한 ‘십 년간 조선 여성의 활동’(1929.1.1.~3)이라는 기획 연재를 통해 여성 운동사를 정리하고 침체기에 빠진 여성운동이 갱생기를 맞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일반 남자는 구도덕과 인습으로써 여자의 잘못을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고 피상(皮相)을 들어다가는 함부로 비판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허영과 사치를 비판하는 조선 남성들이야말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구역이 나서 못 볼 지경’이라는 말로 일갈했다(‘구역질 나는 남성’, 별건곤, 1930.11).

 사람들은 때때로 욕망에도 자격을 두어 가난한 자들이나 여성들의 욕망을 허영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욕망이 계급이나 젠더 등으로 차별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한세경(문근영 분)의 "왜 (가난한) 나는 꽃뱀이고 (부자인) 네가 하면 비즈니스지?”라는 항변이 와 닿는 이유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