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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박근혜 통치 1년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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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영기
논설위원·JTBC뉴스9 앵커

통치(統治)란 무엇인가-. ‘대통령의 정치’를 통치라 할 수 있겠죠. 대통령은 그 시기 국민의 결핍과 기대감과 이해관계가 반영된 시대정신 자체입니다. 대통령 권력의 이동이 국민의 삶의 조건,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이 때문이죠.

김대중 대통령 시절은 호남과 벤처산업이 기회의 창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땐 비주류와 40대의 몸값이 치솟았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토목공사와 보수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다음 달 열리게 될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는 어떨까요.

 아마 기회의 창은 복지 비즈니스와 내수(內需), 일자리 쪽에 있을 것 같습니다. 몸값이 오를 사람은 박근혜와 인연이 있는 비정치적인 전문인일 거고요. 절차와 질서를 높이 치는 가치관도 확산되겠죠.

 박근혜 시대의 성패는 통치 1년, 즉 올해 가려지게 될 겁니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 5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첫 1년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영광과 치욕은 대체로 첫해에 결판났습니다. 그래서 ‘집권보다 중요한 통치 1년’이란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통치 1년이면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성할 땐데 왜 거기서 실패가 일어날까요? 대선 불복 세력 때문입니다. 대선 불복 세력도 새 대통령 통치 1년 때, 가장 강성한 법이죠. 대선의 추억이 삼삼하고, 패배의 현실을 실감하기 어려운데 의욕 과잉의 초짜 대통령은 불복 세력이 들고 일어날 만한 빌미를 제공하곤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땐 한나라당이 대선 불복의 중심이자 선도세력이었습니다. 2003년 한나라당은 ‘노무현 당선 무효소송’으로 1500만 표에 대한 재검표까지 실시했습니다. 그들의 불복 본능은 국회 1당의 거대한 힘을 이용해 대통령 탄핵 의결로 이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1년(2008년)은 어땠습니까.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야심만만한 꿈을 키우던 이 대통령은 쇠고기 촛불시위 한 방에 맛이 가버렸습니다. 광화문 네 거리를 돌파해 청와대로 직격하려는 10만 시위대에 놀란 뒤, 이 대통령은 정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의 역량과 관심은 통치기간 내내 꿈과 비전의 적극적 실현보다 촛불 방지라는 수세적 정권관리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석 달 이상 끈 촛불시위는 쇠고기 협상이 표면적인 이슈였지만 사실은 대선 불복 세력이 조직화·전국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까지 대선 불복 세력에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명박의 통치 1년은 유사(類似) 무정부상태, 국가 위기상황이었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통치 1년을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선 불복 세력을 설득하고, 최소화하고, 저항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의 세 항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①친인척 관리 엄격하게=대통령 개인의 문제는 정책 오판이나 정치 잘못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BBK 같은 도덕성 이슈가,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 같은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박 당선인에게 도덕성·자질의 문제는 친인척 관리 쪽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②점령군식 인사가 저항 불러=이명박 대통령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권) 사랑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운동권 코드 같은 편향인사가 소외된 세력에 저항의 불을 붙입니다. 박 당선인은 아직까진 점령군식 인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세, 2인자도 허용하고 있지 않죠.

 ③민주당과 일체감 느껴야=지금 민주당 비대위는 대선 불복 세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촛불시위 때와 모습이 다릅니다. 이럴 때 박 당선인이 민주당 지도부와 문재인 전 후보를 각각 만나 제도권 정치의 건강함을 보여주면 대선 불복 세력은 풀이 죽을 겁니다.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국회와 일체감을 가져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정분리 철학’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여의도와 거리 두기’는 대통령을 고립시켜 대선 불복 세력을 활개치게 했었죠.

 박 당선인의 통치 1년 환경은 좋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여소야대 국회도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 때처럼 야당이 불복 세력에 질질 끌려다니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치 1년, 박근혜의 성패는 본인에게 달려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