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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가슴이 가난한 어른들이여 ‘닫힌 나’를 던져버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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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호 08면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디자인그룹 서가

세종문화회관 1층 전시장에서 27일까지 열리고 있는 ‘상상의 웜홀-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전은 상상력의 보물창고다.
삽으로 만든 머리를 가진 삽새, 몸뚱아리가 치즈 모양인 쥐, 포클레인 부속품으로 만든 아르마딜로가 있는가 하면 손잡이를 돌리면 나무 책 속에서 애벌레가 꿈틀대고,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외계인이 튀어나온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나무 냄새가 나는 반질반질한 질감과 귀엽고 엉뚱한 인형의 표정에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열이면 열 “애들이 보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15년째 목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먹물 목수’ 김진송(54)씨는 그런 부모에게 묻는다.
“왜 애들만 보라고 하는가? 당신은 왜 즐기지 못하는가?”
그의 이런 도발적 질문은 말로는 창의력 양성을 말하면서 사실 창의력 양성에는 관심이 없는, 상상력 개발을 이야기하면서 상상하는 방법을 모르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빈곤한’ 어른들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려치는 죽비다.

‘상상의 웜홀’ 전시회 연 ‘목수’ 김진송

글 쓰다 시들해지면 나무 깎는 글쟁이 목수
김진송은 글쟁이다. 1999년 내놓은 『현대성의 형성: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근현대 문화연구에 새 장을 연 책으로 평가받는다. 문화비평가이자 미술평론가로서 그의 글은 독창적이다.
김진송은 목수다. 97년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 축령산 자락으로 훌쩍 들어갔다. 책상물림이었던 그는 아내에게 화장대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목수가 됐다. 원목의 특징을 재치 있게 살려낸 그의 수제 의자와 탁자는 인기가 제법 많았다. 그렇게 글쟁이와 목수를 오가던 어느 날, 지루했던 그는 나무 토막으로 이상하게 생긴 벌레 한 마리를 만들었고 그 뒤 예기치 못한 세계로 빠져들었다. “벌레에게 이야기를 걸고 또 다른 벌레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벌레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벌레를, 동물을, 사람을, 그리고 세상에 없는 생명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노동을 유희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며. 그 상상의 파편을 형상화한 전시가 2004년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이번 전시는 규모가 더 커졌다.
“나무와 철 조각이 100여 점, 움직이는 조각이 30여 점, 영상작업이 20여 점이다.”

1 김진송 작가의 ‘폭주족’(2010), 단풍나무·마코레·샌드페이퍼, 130 x 38 x 62 cm 2 ‘세상 밖 한 걸음’(2011), 단풍나무·홍송, 76 x 76 x 80 cm 3 ‘비밀의 집’(2010), 단풍나무·합판, 53 x 71 x 94 cm 4 ‘책과 책벌레’(2011), 단풍나무·물푸레나무, 85 x 35 x 50 cm

-글쓰기와 목수 일을 여전히 주기적으로 반복하는데.
“글 쓸 때는 글에 집중하고 시들해지면 나무를 깎는다. 둘을 동시에 하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와 목수 일은 구조적으로 차이가 없다. 글쓰기는 주제를 정하고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이어 논리적이거나 서사적인 흐름을 엮어낸다. 나무 작업도 똑같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나무를 깎고 이어서 구조를 만들고, 힘의 균형과 미학적 고려를 거쳐 완성한다.”

1~3 전시장 풍경 4 작품 ‘지구에서 살아남기’를 움직여보는 김진송 작가 5 움직인형’ 개념 스케치 6 ‘술 마시는 노인’(2010), 단풍나무, 40 x 32 x 56 cm

-이번 전시에서는 ‘움직인형’이라 이름 붙인 움직이는 조각이 특히 눈길을 끈다.
“문화는 언어를 생산하는 작업인데, 텍스트와 이미지는 다른 언어다. 그런데 텍스트건 이미지건 결핍이 있다. 그래서 둘을 하나로 엮어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사실 그게 영화다. 하지만 나는 목수이고, 이야기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나무 인형에 톱니바퀴를 연결하고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움직이는 인형의 역사가 깊지 않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여덟 살에 죽은 딸을 생각하며 자동 인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토마타(automata)라 불리는 이 움직이는 기계 인형이 점점 늘어나면서 서구사회에서는 17세기부터 수많은 논쟁이 시작됐다. 핵심은 ‘신이 만든 기계가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기계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도 이와 연관성이 있다. 하나의 기계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물질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주는 철학적 명제다.”

-문학과 영화를 통해서도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것을 꾸준히 만들어오지 않았나. 로봇, 사이보그, 복제인간 등 종류도 많은데.
“그렇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아바타’,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럼 왜 인간은 인간과 비슷한 안드로이드 같은 것을 만들까. 그건 바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이, 그런 문화가 없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관점의 차이다. 움직이는 인형이 처음 나왔을 때 가졌던 인간에 대한 의문과 산업혁명 이후 기계에 대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출발선상이 같다. 서구 사회에서 기계의 의미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또 다른 생명체와 비슷한 ‘무엇’이다. 반면 우리는 기계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나. 즉 우리가 생각하는 자동차와 서구인이 생각하는 자동차는 개념이 다르다. 서구에서는 이런 인식 아래 기계 산업이 발달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뭔가를 만드는 기계적 전통이 남아 있다. 이는 논리적 상상력하고도 연결된다.”

-논리적 상상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우리가 창의력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서사적 상상력, 둘째 미학적 상상력, 셋째 논리적 상상력이다. 즉 이야기와 시각적 효과와 기계적 장치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세 개가 따로 논다. 서사적 상상력은 작가가, 미학적 상상력은 화가가, 논리적 상상력은 물리학자나 공학자가 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문화예술에서 논리적 상상력이 약한 것 같다.
“그렇다. 논리적 상상력은 시각적 상상력이나 서사적 상상력을 구조화하는 도구다. 그런데 치밀한 계산과 합리적 유추를 통해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부족하다. 예술과 논리는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농담 하나 할까. 독일에서는 미대 졸업작품전 때 자기 작품을 설명하지 못하면 탈락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설명이 많으면 탈락이다. ‘말이 많으면 평론가나 하라’면서.”

-그런데도 창의력 개발에 대한 관심은 정말 많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을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얘기해 보자. 정말 관심 있는 것이 그의 창의성인가, 아니면 그가 벌어들인 돈인가?”

“상상력 있어야 상투성의 늪에서 빠져나와”
김진송씨는 창의력의 원천은 상상력인데 여기에도 많은 사람의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흔한 오해가 상상력이 동심의 세계에서 비롯됐다는 것. 하지만 이는 “경험과 생각의 부족에 따른 아이들의 엉뚱한 연상이 어른들의 눈에 기발한 상상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상상력이란 경험의 산물”이며 “경험의 여백 속에 상상의 공간이 있는데 어른들이 그곳을 좀체로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말한다. “상상과 현실은 구분되어 있거나 단절된, 서로 다른 공간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동일한 공간이다. 상상은 무수히 많은 경험과 사고의 틈 속에 존재하며 그 틈 속에서 인간의 인식을 무한히 넓히는 자유로운 곳이다. 따라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일상의 경험 속에 매몰되어 상투성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상상목공소』중에서)

-상상하는 힘이 여전히 부족한 이유는 뭔가.
“자기가 생각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애들 책을 어떻게 사주나. 보통 대형서점가서 잘 팔리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고 사주지 않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5000만인 나라에서 1000만 관객 돌파 영화가 한 해에 여러 편 나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어린이와 노인 빼고 문화적 활동 가능한 사람 중에 대부분 봤다는 얘기인데, 자기가 생각해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튀면 안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다.
“내가 목수로서 집에 배달을 가보면 돈 많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실내 장식이 똑같다. 소파의 재질이 무엇이냐, TV의 두께와 크기가 얼마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기만의 주거 공간인데도 어찌 그렇게 다른 사람과 흡사할 수 있을까. 결국 주체로서 주관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타고 보면 딱 세 종류다. 스마트폰으로 게임하거나 드라마 보거나 문자하거나.”

-사회가 창의적인 발상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상상력은 개인적으로 발현되지만 결국 사회적이다.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은 사회적 기준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벗어나는 것을 사회가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발전이 있다.”
전시장은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 호기심 가득한 연인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나무 인형들을 직접 움직여 보거나 도슨트의 시연을 보면서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오토마타에서 자동(auto)이라는 말의 실제적 의미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톱니의 개수에 따라 정해진 동작을 되풀이하는 이 ‘움직인형’들과 우리와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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