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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할머니…" 팔순노인, 수근대는 소리에 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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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3일 충남 지역에 사는 한 독거노인이 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홀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2024년께엔 독거노인 가구가 전체의 10.3%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프리랜서 김성태]

“우리 아파트 301호 할머니가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8월 3일 충남 천안의 한 임대아파트. 경비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301호면 이웃들이 “권씨 할머니”라고 부르는 노인이었다. 권 할머니는 그날 오전 6시쯤 같은 아파트 10층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81세. 팔순 노인이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

특별취재팀 = 정강현·이승호·정종문 기자

할머니는 6남매의 어머니였다. 남편과는 30년 전 사별했다. 그녀는 여러 자식 집을 전전했다. 2011년부터 큰아들과 함께 지냈다. 큰아들은 고물 수집을 해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었다. 예순이 다 되도록 결혼을 못한 상태였다.

 그해 10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할머니의 셋째 아들이 숨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큰아들마저 교도소에 수감됐다. 살인미수 혐의였다. 할머니는 졸지에 독거노인이 됐다. 나머지 자녀들 가운데 모시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홀로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남 몰래 눈물을 훔치는 날들이 몇 달간 이어졌다.

 지난해 7월 할머니는 노인정에 나갈 결심을 했다. ‘비슷한 처지의 노인네들과 말이라도 섞으면 덜 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정 생활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말벗이 생겨나자 점차 웃음도 되찾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몇몇 할머니가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저 할머니, 셋째는 술 때문에 죽고 장남은 교도소에 들어갔다던데….”

 그날부터 권 할머니를 슬금슬금 피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노인정 행사에서 슬쩍 제외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당한다는 왕따가 노인정에도 있구나.’ 할머니는 결국 노인정에 발길을 끊었다.

 투신 자살을 결심하던 날, 할머니는 하늘색 한복을 꺼내 입었다. 특별한 날에만 아껴 입던 20년도 더 된 한복이었다. 유서는 없었다. 빈 방에는 수의(壽衣) 한 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황혼의 고독’이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권 할머니처럼 노년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는 2001년 1448명에서 2011년 4406명으로 10년 새 세 배로 증가했다. 하루평균 12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얘기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9년 OECD가 조사한 65~74세 노인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에서 한국은 81.8명으로 1위였다. 미국(14.1명)의 5배, 영국(4.8명)의 20배나 되는 수치다.

 2026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드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본지 취재팀이 이미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충남·전남의 시·군 5곳을 취재한 결과 노인 자살 문제가 지역 사회의 고민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자살예방협회 하규섭(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회장은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고 배우자마저 먼저 죽고 나면 고독감이 클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다 노환까지 겹치면 외로움이 극대화돼 자살을 결심할 개연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웃에서 죽은 사실조차 모르는 ‘고독사’=독거노인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다. 자식이 있더라도 돌보지 않거나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노인들은 깊은 고독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거노인은 2000년 54만3522명에서 2010년 105만5650명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께 독거노인 가구 비율은 전체의 10.3%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열 집당 한 집은 독거노인이라는 얘기다.

 독거노인이 늘어나면 돌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孤獨死)’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취재진이 다녀온 충남·전남 지역에선 연간 수십 건의 고독사가 발생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12일 오전 전남 고흥군 옥하리에선 정모(82)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정 할머니는 독거노인이었다. 할머니는 집 안 텃밭에서 생강을 캐던 자세 그대로 사망했다. 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시신은 비가 오는데도 밭에 방치돼 있었다. 어떤 이웃도 할머니를 들여다보거나 찾지 않았다. 할머니의 시신은 숨진 지 사흘 만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양모(81) 할머니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정 할머니의 시신은 비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시골 마을에 독거노인이 많아지면서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할 판”이라며 “외롭게 죽어가는 노인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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