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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서 이뽑은 90세 할머니, 닷새 뒤 갑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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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임 할머니.

“아, 아, 아…, 마이크, 마이크 테스트. 주민 여러분, 이장입니다. 우리 동네 임재희 할머니가 실종됐습니다. 줄무늬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고….”

 지난해 12월 26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 증산리의 늦은 저녁. 고요한 마을이 술렁이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 14.5도까지 곤두박질쳤던 날. 임 할머니는 오전 9시쯤 분홍색 외투 차림에 파란색 털신을 신고 집을 나섰다.

 “엄니, 날도 추운데 어디 가시려구유?”

 “늙은이가 집구석에 있으면 뭐 하게. 노인정에나 갈란다.”

 둘째 아들은 유모차에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떼는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 집에 삼형제가 모였다. 가족들은 동네를 돌며 “엄니”를 외치면서 석성파출소에 신고했다.

 할머니는 90세였다. 할머니는 가끔 기억력이 왔다 갔다 하긴 했지만 치매는 아니었다. 다음 날 부여경찰서에 30명 규모의 수색팀이 꾸려졌다. 노인 실종은 이 지역에선 흔한 일이었다. 충남에선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380여 명이 실종됐다. 어머니 실종사건을 다룬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장면이 연상되는 이 같은 노인 실종이 대한민국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3989명. 하루 평균 11명의 노인이 사라졌다.

 할머니 모습은 논산 H의원 인근 CCTV에 포착됐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밀며 걷다가 인근 S전자 대리점으로 들어갔다.

 “총각, 근처에 치과 없는가. 이를 빼야겠는데.”

 대리점 직원은 할머니 손을 잡고 200여m 떨어진 Y치과까지 동행했다. 할머니는 이가 달랑 하나 남아 있었다. 이날 할머니는 위태롭게 달려 있던 자신의 마지막 윗니를 뽑아냈다.

 CCTV에 다시 잡힌 할머니는 집이 있는 석성면의 반대 방향 차를 탔다. 그러곤 한 정거장을 간 뒤 버스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밀며 석성면 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논길로 방향을 튼 할머니는 CCTV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실종된 지 닷새째인 12월 30일. 석성면 방향 논에서 할머니의 시신이 발견됐다. 밤새 내린 눈에 파묻힌 채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분홍색 외투를 벗어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둘째 아들이 사준 옷이었다. 시신 상태를 살피던 경찰이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눈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 겨울에 실종된 노인들 중 상당수가 동사한 채 발견되곤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6년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국 평균 2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초고령 대한민국’에선 어떤 치안 문제가 나타날까. 본지 취재팀은 충남 청양(노인 비율 29.4%)·금산(23.9%)·부여(26.2%)·논산(20.3%)과 전남 고흥(32.6%) 등을 현장 취재했다. 이 지역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미래의 노인 치안 문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취재 결과 노인 실종 외에 자살·고독사·노인 대상 범죄 등이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국내 독거노인 가구는 2001년 58만9415가구에서 지난해 118만6831가구로 늘었다. ‘황혼의 고독’은 노인 자살을 부르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은 2001년 14.4명에서 2011년 31.7명으로 2배 이상 높아졌다. 초고령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우리 사회에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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