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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보다 못한 나눔 …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봉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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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성현

지난 연말 경기도 한 고아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최모(54·여)씨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했다. 고아원의 낡은 보일러 시설을 교체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지역에서 ‘잘사는’ 주민들을 주로 접촉했지만 하나같이 거절당했다. 최씨는 “집에 자동차가 세 대씩이나 되는데도 몇 년 동안 성금 한 번 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며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의 나눔문화는 매우 인색하다. 2011년 통계청이 전국 3만8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기부실태를 조사해 보니 ‘기부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36.4%에 불과했다. 1인당 평균 기부금은 16만7000원으로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명성과 달리 2012년 세계 나눔지수는 45위(영국 자선원조재단 145개국 대상 조사)였다. 개발도상국인 캄보디아·케냐(40위)보다도 낮았다. 나눔에 대한 청소년들의 의식도 부족하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생 2만4126명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물어보니 1위가 돈(52.5%)이었다. 봉사(나눔)를 답한 비율은 5.7%에 그쳤다.

 나눔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필수 조건이다. 거창한 희생을 떠올리며 주저하기보다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교과부의 ‘교육기부대상’을 받은 김성현(23·중앙대 사회복지학)씨. 그는 2011년부터 친구들과 다빈치봉사단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저소득층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실험을 통해 과학원리를 알려주고 직접 박물관에 데려가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우게 한다. 여름·겨울방학 때는 시골학교를 찾아가 2박3일간 캠프를 열고 아이들과 함께 뛰논다. 김씨는 “남을 도울 때마다 스스로도 많이 배우게 돼 내 인생의 성장판이 열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나눔을 실천한 것은 중1 때. 독거노인과 결식아동을 위한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다. 매주 월·목요일 수업이 끝나고 하루 2~3시간씩 40가구를 돌았다. 소극적인 성격 탓에 처음엔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한두 달이 지나자 봉사의 즐거움을 깨닫게 됐다. 노인들의 말벗이 돼주고 또 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스스로도 성숙했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꼬박 7년간 400여 명을 만났다.

 김씨는 중3 때 ‘나눔을 나눠보자’는 생각에서 교내에 ‘나누미’라는 봉사단도 만들었다. 거리공연 등으로 어린이 화상 환자의 수술비를 모금하는 일이었다. 인근 학교까지 나누미 활동이 알려지면서 3개교에서 120명이 참여해 꼬박 넉 달을 모금했다. 2000명이 넘는 시민들로부터 1억원을 모아 12명의 어린이를 수술했다. 고교 때는 60명의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3년 동안 정신지체 아동들의 멘토로 활동했다. 김씨는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포드햄대 앨런 루크 박사가 자원봉사자 3000명을 조사해 보니 95%가 남을 도울 때 강한 쾌감을 느끼고 또래보다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루크 박사는 “마라톤을 통해 얻는 희열감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봉사자들은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느낀다”며 “이런 기분은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만든다”고 말했다(『선행이 갖는 치유의 힘』). 본지는 한 달에 한 번 작은 재능기부에 동참하자고 제안한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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