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13 나의 비전 ④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경기도 양평에 개신교 생활공동체인 평화마을을 조성하는 방인성 목사. 남북 평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젊은 세대 6∼8가구를 수용해 교육·여가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키울 계획이다. [김상선 기자]

예배당 없는 교회인 ‘함께여는교회’의 방인성(59) 목사는 신장이 한 개 없다. 아픈 신자를 위해 기증했다. 교회 식구 중 누군가 신장을 기증하면 신장병을 앓는 신자의 이식 순번이 빨라진다고 해서 한 일이다. 2004년 서울 창신동 성터교회 시절의 일이다.

 “목사의 설교와 삶은 일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 그는 교회 행정을 책임지는 당회장 자리를 목사 아닌 장로에게 맡기기도 했다. 목사의 독단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축소한 거다. 지금의 교회는 2008년 문을 열었다. 종로 한복판 파고다어학원 건물의 지하 이벤트홀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린다.

 방 목사의 개혁 발걸음은 개별 교회 울타리를 훌쩍 벗어난다. 그는 교회개혁실천연대·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등 개신교 개혁 단체 일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그런 방 목사가 올해 새로운 실험을 한다. 남북평화와 통일에 관심 있는 젊은 부부들이 함께 사는 마을공동체를 꾸리는 일이다. 교회 집사로부터 기증받은 경기도 양평군 신복리 1000평 가량의 대지에 마련한다.

 1차로 방 목사 부부와 의지할 곳 없는 80대 노인, 장애 여성 등이 입주할 쉼터 형태의 단독 주택이 3월 문을 연다. 남북통일이라는 거창한 가치가 어떻게 마을공동체와 연결되는 걸까. 10일 방 목사를 만났다.

 -마을의 모습이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토지는 법인을 만들어 소유토록 하고 입주자들은 매달 일정액의 지대(地代)를 내는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심각한 주거난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땅 문제가 해결되면 도심에서 전세금 뺀 돈으로 시골에 집 짓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임자 없는 북한 땅을 처리하는 방식으로도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 때문에 남북 문제에 관심 있는 젊은 부부들이 현재 구체적인 마을 청사진을 논의 중이다. 연내에 한 채라도 착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을 이름도 평화마을로 지을 생각이다.”

 -몇 가구나 들어서나.

 “땅이 넓지 않기 때문에 땅콩집을 지을 생각이다. 6∼8가구 정도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6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구성원은 다양하다. 탈북자 부부도 있고, 국책 연구원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교육과 여가, 간단한 농사일을 함께 하는 생활 공동체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사업의 기독교적 근거는.

 “기독교 전통 중 ‘희년(禧年)’이라는 게 있다. 토지든 노예든 빌린 지 50년이 되는 해에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관습이다. 성서 레위기에 나와 있다. 햇볕이나 공기처럼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은 공유하자는 철학이 담겨 있다.”

 -그렇더라도 통일을 염두에 둔 마을공동체와 기독교는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목사로서 내 근본적인 소명은 평화다. 청년 시절부터 그리스도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평화라고 생각했다. 남북통일도 그렇고, 우리 안의 갈등도 그렇고, 차이를 넘어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는 게 내 목회의 관심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할아버지가 한국 개신교 초창기 지도자 중 한 분인 방계성 목사다. 조부는 일제 치하 신사 참배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렀다.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를 도왔다. 해방 후 강단에 인공기를 내걸라는 북한군의 지시를 무시했다가 총살당하셨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일어난 일이다. 이런 비극은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다. 성경의 복음이 원수를 품어 안고 평화를 이뤄낼 수 있는 힘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고, 통일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것 같다.”

 방 목사는 영국 런던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영국 국제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옥스퍼드 한인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현재 ‘함께여는교회’의 재적 인원은 100명, 주일 출석인원은 80명 정도. 대의로서의 통일이 아닌 생활로서의 통일을 꿈꾸는 그의 실험이 정체된 한국 기독교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든 건 밀알 하나에서 시작되는 데 말이다.

◆방인성 목사=1954년생. 조부 방계성 목사가 일제 때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렀다. 아버지 방정원 목사를 이어 3대째 목회를 하고 있다. 2002년 교회개혁실천연대 발족에 관여하는 등 개신교 개혁 활동을 펼쳐왔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실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