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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숭배’버핏이 다시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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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5월 버크셔 해서웨이 정기 주주총회장에 등장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사진을 활용해 그린 카드. [오마하(네브래스카)=블룸버그 뉴스]

지난해 8월 미국 월가에선 ‘주식 숭배(Cult of Equities)의 종언’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세계 최대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빌 그로스가 “주식 숭배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고 선언했다. 투자자들이 더 이상 주식 투자를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버핏이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경제 성장의 과실을 가장 많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투자수단은 채권이나 원자재보다 주식”이라고 받아쳤다. 버핏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에도 주식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버핏의 강한 반박에도 지난해 8월엔 그로스의 말을 믿는 쪽이 우세했다. 투자자들이 주식형 펀드에서 돈을 빼내기 바빴다. 그런데 요즘 글로벌 자금 흐름을 보면 정반대의 기운이 감돈다.

 미국 금융정보회사인 EPFR글로벌에 따르면 올 들어 1월 9일까지 한 주 동안(영업일 기준) 세계 주식형 펀드에 순수하게 흘러든 돈이 222억 달러(약 23조3000억원)에 이른다. 주간 순유입액으론 2007년 9월 이후 5년5개월 만에 가장 많다. 그해 9월은 중국 등 글로벌 주가가 거품 단계를 향해 치달았던 때다.

 더욱이 EPFR은 “222억 달러는 주간 단위 순유입액으로선 닷컴 열풍이 막 시작된 1997년 이후 둘째로 많은 규모”라며 “반면 글로벌 채권형 펀드들에 흘러든 돈은 32억7000만 달러 정도에 그쳤다”고 밝혔다. 채권형 펀드의 순유입액은 주식형 펀드의 14%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주식과 채권형 펀드 사이 순유입액의 역전은 반짝현상은 아니었다. EPFR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재정절벽 우려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채권형보다 주식형 펀드에 더 많은 돈을 맡기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웰스캐피털의 펀드매니저인 제이 뮐러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년 넘게 몸 사리고 있다가 이제 두려움을 털어내고 고수익 사냥에 나서기 시작한 듯하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고수익 성향은 지역·시장별 펀드 자금 유입 상황에서도 확인된다. EPFR에 따르면 9일까지 한 주 동안 유입된 222억 달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04억 달러(46%)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돈이었다. 그리고 33.3%인 74억 달러는 신흥국 전용 펀드에 유입됐다. 반면 일본·유럽 등을 겨냥한 펀드엔 35억 달러(15.7%)가 들어오는 데 그쳤다. 경제 회복에 따른 고수익 가능성이 엿보이는 쪽으로 돈이 몰리고 있는 셈이다.

그 바람에 ‘대전환(Great Rotation)’이 시작됐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글로벌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경기침체를 헤지할 수 있는 국채시장에서 빠져나와 위험 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승자는 그로스가 아니라 버핏인 셈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메이저 자산운용사들의 전망을 근거로 “2014년은 주식이 부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절벽과 그리스 유로존 탈퇴 등 대형 악재가 거의 진정돼서다.

 남은 복병은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확대 협상 정도다. 최근 주요 증시의 흐름을 보면 이 리스크는 큰 문제가 안 되는 듯하다. 미국 다우지수 등 글로벌 주요 지수들이 올 들어서만 3% 안팎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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