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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진짜 스타들의 수난

중앙일보

입력

요즘 대한민국 국민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영화 사랑하기에 동참한 듯한 느낌이다.

관람자 수는 천문학적이고-물론 지나치게 편중돼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어느덧 영화는 한국문화의 중심이 돼가고 있다. 그럼에도 꼬마 때부터 영화를 사랑해온 한 사람으로서 뭔가 늘 아쉽다.

*** 한국영화 사랑하기 동참

나는 어린 시절의 일부를 부산에서 보냈는데 우리 집 바로 건너에 나보다 두 살 어린 딸아이를 둔 영화관주인 집이 있었다. 아마 내가 아홉 살쯤 되었던가. 어느 여름 그 애와 같이 그 집 극장에 가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공짜로 구경하게 됐다.

그것이 나의 영화사랑의 시작이었다. 비비언 리와 클라크 케이블(그땐 이름도 제대로 몰랐겠지만) , 그리고 그 드라마틱한 장면들…다시 보고 싶어 그 애를 꼬드겨 거의 매일 그 영화를 보러갔고, 여섯 번 정도 보고 났을 때 딸의 교육에 위기를 느낀 내 어머니가 우리를 영화관에 발도 못붙이도록 그 집에 신신당부를 하고 급기야는 우리가 함께 노는 것마저 훼방을 놓으셨다.

그리고 한 3년 극장 근처는 얼씬도 못했다. 그런데 내게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모가 있었는데,그 이모가 어느 날 나를 데리고 간 영화가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녀'라는 영화였다.나는 그 영화에 푹 빠져 들어갔다.

그 바다 풍경,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고대조각상, 그리고 화면을 꽉 채우는 여배우의 생동감. 급기야 나는 피아노 레슨비를 '횡령'해 그 영화를 다시 보러갔다. 세번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잊지 못하는 영화를 한 개만 더 든다면 '남과 여'가 아닌가 생각한다. 땅딸막한 남자주연은 별로였고 여주역의 아누크 에메의 매력은 그 영화의 압권이었다.

후에 비비언 리와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영화는 빠짐없이 본 것 같다. 불행히도 아누크 에메의 경우는 그를 살려주는 영화를 그 이후 못 만난 것 같았다.

지난 10여년 동안은 프랑스의 잔 모로와 줄리에트 비노슈, 미국의 메릴 스트립과 글렌 크로스, 중국의 궁리의 영화는 다 찾아 본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의 충성스러운 팬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신작을 통해 건재를 과시한다.

한국에서 나를 매료시킨 여배우를 든다면 단연 강수연(씨받이) .이보희(꼬방동네) .이혜영(겨울나그네) .방은진(301,302) .심은하(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의 충성팬이 되고 싶었다. 타고난 배우들이라 몇 감독이 욕심과 용기를 가지기만 하면 수작이 나올 수 있을 텐데. 남자배우하고만 의리 찾지 말고 말이다.

그나마 남자배우들은 다양한 배역기회가 있지 않은가. 나이가 찬 여배우의 매몰과 끝없이 싱싱한 신인배우의 발굴은 한국의 영화가 대부분 틴에이저와 20대의 관객이 목표임을 말해준다.

그들을 주연으로 한 얄팍한 청춘물.엽기물.폭력물이 판을 치는 척박한 환경에서 그냥 포기할 수는 없어, 예술혼이 남아 있어, 또 살기 위해서 TV드라마의 조역으로나 아예 영화감독으로 변신하며 애쓰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 왜 뜨는 장르만 답습하나

명마가 명마답게 달릴 기회를 주지 못하면 결국 누구의 손실이겠는??궁리라는 스타파워가 없는 중국영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몇 편의 수작에서 꾸준히 열연할 기회가 주어지고 세계의 영화제에서 익숙한 얼굴이 된 그는 이제 아시아의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까지 됐다. 국제무대에서도 감독파워 못지 않게 스타파워도 큰 전략이란 점을 입증해 준다. 훨씬 뒤처졌던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세계적 톱스타를 내놓은 것이다. 참 부럽다.

미모와 젊음만을 제일의 가치로 삼는 것은 한국사회에 만연된 현상이다.그리고 좀 뜬다 하는 장르를 답습해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그러나 실력 있는 자,진짜스타들을 꾸준히 밀어주는 사회, 그들이 제 역할을 하며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영화세계화도 문화세계화도 결국 소수의 정예스타들이 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金紅男(이화여대 교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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