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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700만 넘어 흑자 기대…이사회·노조 모두 찬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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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호 19면

1 양해영 KBO 사무총장이 11일 서울 도곡동 KBO 기자실에서 수원 KT가 10구단 후보로 선정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 경기도 수원야구장 리모델링 조감도. 3 염태영 이석채 김문수

지난 7일 이석채(68) KT그룹 회장과 염태영(53) 수원시장, 이재율(53) 경기도 경제부지사가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 있는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방문해 프로야구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같은 날 이중근(72) 부영그룹 회장과 김완주(67) 전북도지사도 신청서를 냈다. 프로야구 10번째 회원이 되기 위해 두 그룹과 지자체가 정면으로 대결한 것이다.

재수 끝에 프로야구 10번째 주인공 된 KT

창단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주영범(49) KT 스포츠단장에게 “6년 전이었다면 무혈입성했을 텐데요”라고 다소 짓궂게 기자가 질문했다. 주 단장은 “맞습니다. 그러나 예전 프로야구와 2013년 프로야구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KT 기업구조도 그동안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야구단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 회의실로 이동했다. 나흘 뒤인 11일 KT·수원은 KBO 이사회로부터 10구단 창단 승인을 받았다.

KT, 기금 200억원과 돔 구장 약속
사실 처음부터 KT·수원의 승산이 부영·전북보다 훨씬 높았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KT그룹은 자산 32조원, 매출 28조원의 재계 15위 거대 기업이다. 부영그룹(자산 12조 5000억원, 매출 2조5000억원)을 많이 앞선다. 기업 규모뿐만 아니라 연고 규모에서도 일방적인 우위였다. 수원 인구가 115만 명, 경기도 인구는 1200만 명에 달하지만 전북 인구를 다 합쳐도 187만 명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수도권 편중을 지적한 부영·전북의 공세에 KT·수원은 끝까지 고전했다.

KT는 2007년 프로야구의 여덟 번째 주인이 될 뻔했다. 수년째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를 결정했을 때 KT가 인수자로 나섰다. KT는 김시진(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단 구성을 계획했고, 유니폼 제작에 들어갔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던 인수 작업이 며칠 만에 멈췄다. 자금 때문이었다.

KT는 프로야구 가입금으로 60억원 정도를 쓸 생각이었다. 서울로 입성할 경우 서울 연고팀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보상금으로 54억원을 더 내야 한다는 문제에 부딪히자 발을 뺐다. 구단 운영에만 매년 1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날 텐데, 초기 투자비용으로 114억원을 투자할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KT가 빠지고 STX가 인수전에 나섰다가 돌아섰다. 이때 KBO 고위 관계자는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야구단을 하겠다는 기업이 없다”고 푸념했다. 무책임한 발언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2007년 프로야구의 냉정한 현주소였다. 현대는 해체됐고 2008년 초 자본금 5000만원의 투자자문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 선수단을 인수해 서울 히어로즈(현 넥센)를 창단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9구단 NC 다이노스가 2011년 창단해 2군 리그를 거쳐 올해 1군 리그에 진입한다. 프로야구 여덟 번째 주인공이 될 뻔했던 KT는 이번에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수한 공약을 내걸고 10구단 창단 승인을 받았다.

KT가 KBO와 기존 9개 구단, 그리고 야구팬들에게 제시한 청사진은 놀라울 정도다. 야구발전기금 200억원을 내놓고, 2020년께 5000억원을 들여 수원에 돔구장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경기도에 6개 구단이 경쟁하는 독립리그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KT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양해영(52) KBO 사무총장은 “꿈길을 걷는 기분이었다”고까지 했다.
KT는 6년 전보다 몇 배의 돈을 창단 비용으로 준비해야 했고, 치열한 경쟁까지 치러야 했다. 2015년 1군 진입을 목표로 선수단을 구성해야 한다. 2007년이었다면 KT가 서울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3·2004년 현대의 우승 주역들을 고스란히 넘겨받아 2008년부터 리그에 참가할 수 있었다. 조건은 과거에 비해 나빠졌지만 KT는 몇 배의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그래도 KT는 “자회사를 포함한 임직원 6만여 명이 모두 기뻐하고 있다. 야구와 최첨단 통신 서비스를 결합해 재미있는 콘텐트를 만들 것”이라며 축제 분위기다.

6년 만에 달라진 프로야구의 위상
KT가 의사결정이 빠르고 공격적이었다면 6년 전 현대를 인수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프로야구의 황금기를 다른 구단들과 함께 열 수 있었다. 프로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디딤돌 삼아 무섭게 성장했다. 류현진(LA 다저스)·이대호(오릭스 버팔로스) 등 젊은 스타들이 탄생해 해외무대로 진출했고, 박찬호(은퇴)·이승엽(삼성 라이온즈) 등 수퍼스타들이 국내에 복귀하며 흥미로운 뉴스가 쏟아졌다.

젊은 팬, 여성 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 산업화에도 성공하고 있다. 2006년 300만 명이었던 시즌 총 관중이 가파르게 늘어 2012년 700만 명을 돌파했고 관중 수입은 이보다 더 늘었다. 중계권 수입과 마케팅 수입은 더 큰 폭으로 증가해 구단 적자폭은 수십억원대로 줄었다. 현재 흐름을 이어간다면 조만간 흑자구단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룹의 홍보효과와 절세효과 등을 생각하면 야구는 이미 프로스포츠 최고의 상품이다.

주 단장은 “과거엔 이사회가 야구단 창단을 반대했죠. 야구단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우리가 야구단 창단 계획을 발표하자 이사회는 물론 노조까지 찬성했어요. 그래서 창단 작업이 더 탄력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7년엔 KTF를 합병하기 전이었죠. 이후 KT는 유무선통신을 기반으로 금융·미디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룹의 비전이 프로야구단 운영 목적과 부합합니다. 투자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합니다”라고 덧붙였다.

KT의 합류로 프로야구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존 구단들은 리그 확장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모기업이 없는 넥센의 재무구조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야구가 현재 활황인 건 틀림없지만 구단들이 아직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9구단, 10구단이 연속으로 생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그러나 10구단 운영주체가 KT로 결정되면서 10구단 체제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됐다. 10구단 평가위원들은 “KT가 안정적으로 구단을 운영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KT의 등장으로 프로야구의 라이벌 구도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통신 라이벌인 SK 와이번스(인천)·LG(서울)와의 대결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수원을 연고로 프로축구단을 운영하는 삼성과도 묘한 관계에 놓이게 됐다. 과거 ‘제과 라이벌’ 해태-롯데전, ‘전자 라이벌’ LG-삼성전만큼이나 다양한 스토리를 담은 매치가 나올 수 있다.

2015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KT는 이미 멋진 전초전을 보여줬다. 한 달 동안 부영·전북과 프로야구 10번째 주인공이 되기 위해 뜨겁게 싸운 것이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창단 입찰’이 과열돼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과정은 프로야구의 높아진 시장가치를 증명했다. KT와 수원의 물량공세에 기존 야구단과 지자체도 상당한 자극을 받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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