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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주민 부담, 성공하면 단체장 치적 ‘사또 증후군’에 너도나도 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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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호 04면

경기도 군포시가 4억5000여만원을 들여 산본 철쭉공원에 세운 ‘김연아 동상’. 김연아의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지만 김연아 측으로부터 초상권이나 성명권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김연아 얼굴을 그리지 못했다.조용철 기자

소설가 이외수(67)씨 거처의 ‘아방궁’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이 예산 90억원을 들여 이씨를 위한 생활·작업공간을 제공하면서다. 화천군은 춘천에 살고 있던 이씨에게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며 이주를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여 이씨는 2006년 3월 화천으로 이사했다. 인구 2만5000여 명의 화천군은 지난해 재정 자립도 10.9%에 불과한 소군(小郡)이다. 이 때문에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와 논객들을 중심으로 예산 낭비성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격을 받고 있는 이씨는 트위터에서 “결백이 밝혀지면 비방과 모욕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유명 인사를 앞세운 지자체의 홍보 마케팅은 화천군만의 일이 아니다. 이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 유명인 마케팅의 허와 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철쭉공원 한편엔 10m짜리 구조물이 서있다.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지구 위에서 스파이럴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다. 주민들은 ‘김연아 동상’이라고 부른다. 안내판엔 “피겨 퀸 김연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써 있다. 이 조형물은 군포시가 2010년 11월 세웠다. 그해 김연아가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자 군포시가 도시 이미지를 높이자는 목적에서 건립했다고 한다. 군포는 김연아가 자란 도시다. 조형물 주변엔 그의 출신교인 신흥초교와 도장중, 수리고가 있다. 조형물 제작에만 4억5000여만원이 들었고, 조명·잔디 등 공사에 7000여만원이 따로 투입됐다.
그러나 피겨 선수 동상의 얼굴을 보면 김연아와 전혀 닮지 않았다. 군포시가 김연아 측으로부터 초상권이나 성명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지난해 9월 보도자료를 통해 “동상은 김연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힌 상태다.

전유성씨의 경북 청도 ‘코미디철가방극장’.

김연아 조형물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조형물 기둥의 올림픽 마크가 발단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법적 검토를 거쳐 군포시에 시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포시가 우리와 협의 없이 올림픽 오륜(五輪)마크를 사용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의가 원만히 끝나지 않을 경우 조형물 철거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김연아도 부인하는 ‘김연아 동상’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유명인을 내세워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스포츠 스타나 인기 작가 등 유명 인사를 앞세워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기업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일부 지자체는 유명인 마케팅으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하는 경우도 많아 잡음도 들린다. 김연아 조형물이 그 한 예다.

군포시 의회 송정열 의원은 “당초 군포시는 ‘김연아 빙상장’을 지으려고 했지만 예산문제 때문에 포기했다”며 “이후 ‘김연아 거리’ 조성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시의회에서 ‘김연아가 아직 어린 학생이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반대해 무산됐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김연아 조형물도 원래 3개를 만들려고 했는데 시의회에서 예산 낭비를 지적해 1개로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인 ‘군포시 비리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조형물 사업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1억원도 안 되는 조형물에 5억원이 넘는 예산이 낭비됐다고 한다. 대책위 이상철 상임고문은 “심사위원회 같은 심의기구에서 검토되지 않고 사업이 시작됐다. 또 사실상 사업 총괄 책임자가 인물상과 지구 형상 제작의 하청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군포시에선 김연아 조형물이 전임 노재영 시장 때 추진된 사업이며, 현 김윤주 시장은 이미 예산이 50% 집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심의기구를 거칠 의무가 없고, 작품성과 상징성의 값을 제대로 매기긴 힘들다”고 해명했다. 또 “대책위가 지목한 인사는 시가 위촉한 책임자가 아니라 설계업체의 자문을 담당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군포경찰서는 일부 공무원이 조형물 예산을 낭비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는지 수사 중이다.

“한국에만 있는 생존 작가들 문학관”
수원의 ‘박지성로’ 때문에 두 지자체가 분쟁을 벌였다. 이 도로는 2005년 6월 개통돼 박지성 선수의 이름이 붙여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결승골을 넣으면서 손학규 당시 경기도지사가 그의 이름을 딴 도로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동탄신도시가 생긴 뒤 박지성로가 화성시까지 이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008년 화성시가 도로 이름에 이의를 제기했다. 화성시는 박지성로의 수원시 구간(1.3㎞)보다 화성시 구간(3.4㎞)이 더 길어 화성시가 이름을 정할 권한이 있다며 박지성로를 ‘센트럴파크로’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정부의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생존 인물의 이름을 딴 도로명은 사용할 수 없다고도 돼 있다. 수원시와 화성시는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2009년 경기도가 중재에 나서 양측은 ‘동탄 지성로’로 타협을 봤다. 이미 도시계획이 다 만들어졌는데도 지자체가 꼼꼼하게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4년 만에 도로명을 변경하는 수고를 하게 된 것이다.

유명인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문학관이다. 한국문학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협회에 등록된 문학관은 60곳이다. 유명 작가와 작품의 상업적 가치를 노린 지자체들 때문에 전국 곳곳에 문학관·문학촌이 들어서고 있다. 2002년부터 중앙정부가 ‘낙후 지역문화 활성’을 위해 문학관 건립비의 40%까지를 국고로 지원하면서 문학관 건립 붐이 일었다. 화천의 ‘이외수 감성마을’(소설가 이외수씨)이나 전남 보성의 ‘태백산맥 문학관’(소설가 조정래씨)처럼 생존 작가의 문학관도 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유럽에선 작가가 사망하면 그의 고향에서 평소 쓰던 물건이나 초고, 원고지를 지역사회에서 기증받거나 매입해 문학관이 조성되는 게 보통”이라며 “생존 작가 문학관은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춘천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인 소설가 전상국씨는 “나도 이외수 감성마을 개관식에 가기도 했지만, 생존한 작가의 문학관을 만드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선례가 만들어지면 문학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생존 작가의 문학관때문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특정 작가를 놓고 지자체끼리 경쟁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유럽 체류를 마치고 2007년 귀국하자 경기도 양평과 가평, 전북 진안과 전남 구례 등 4곳이 서로 황씨를 모시려고 경합했다. 그 가운데 진안과 구례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진안군은 버려진 초등학교를 사들여 황씨 부부의 거주 공간과 집필실·전시실·세미나실 등 부대시설 등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진안군 관계자는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는데 예산 낭비를 우려한 지역 여론이 일면서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난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살아서 문학관을 만든다든지 하는 허튼 짓은 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설가 고 박경리씨를 기리는 문학관은 강원도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 문학관, 경남 하동의 평사리 문학관,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 등 4곳이나 있다.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의 문학관도 전북 전주와 남원 두 군데에 있다.

박경리 토지문화관, 이외수 감성마을, 김유정문학촌 등 몇 군데를 빼고는 대부분 문학관의 관람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운영 프로그램이나 콘텐트가 마련되지도 않은 채 일단 문학관부터 세웠기 때문이다. 전상국씨는 “소프트웨어 없이 전시성만을 강조한 문학관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유성 활용한 청도는 성공 사례 평가
경희대 관광학부 이기종 교수는 “유명인을 통해 지역을 소개하는 것은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다. 일종의 도시광고 형태”라며 “국내외 성공 사례가 꽤 된다”고 말했다. 청도군은 2011년 코미디언 전유성씨의 ‘코미디철가방극장’을 건립하는 데 예산을 지원했다. 시골에서 하는 코미디 공연이지만 공연 횟수는 이미 400회를 넘어섰고 인터넷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연속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인근 대구뿐만 아니라 부산과 전남의 관객들도 전씨의 극장을 찾는다. 이 덕분에 농산물 판매와 지역 음식점의 매상이 오르고 있다고 한다. 청도군 관계자는 “처음엔 청도라고 하면 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배 타고 들어가야 되나’라는 문의 전화도 받았다. 요즘 전씨 덕분에 청도가 제법 많이 알려졌다”며 “소싸움과 청도반시와 연계돼 홍보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도군은 내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코미디창작촌을 건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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